'데니안'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2.04 '추노' 옷고름에 담긴 혜원의 두 마음 (42)
  2. 2010.02.03 '추노' 혁명가 이대길이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이유 (36)
  3. 2010.01.30 '추노' 대길의 비밀, 돈은 어디로 갔을까? (30)
  4. 2010.01.28 '추노' 업복이에게 암살 지령 내린 그 분, 누구? (59)
  5. 2010.01.23 '추노' 최고의 의상, 언년의 소복과 꽃그림의 의미 (85)
2010.02.04 08:01




추노 9회는 그야말로 숨돌릴 틈도 없는 긴장감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었습니다. 한장면 한장면이 그림같았고, 의미 또한 심오하게 담아냈는데요, 저는 언년이(김혜원)과 송태하의 장면을 인상깊게 봤어요. 특히 언년이가 자신의 쓰개치마에서 옷고름을 뜯어 송태하에게 준 것은 그 의미가 컸었지요.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추노 9회 줄거리 요약하고, 혜원의 옷고름에 담긴 혜원의 마음에 대해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객 윤지에 의해 머리띠가 잘려 나가 송태하가 도망노비임을 알게 된 혜원은 송태하를 뿌리치지만, 송태하는 언년을 데리고 함께 배를 타고 제주로 향합니다. 송태하를 쫓던 대길은 호위무사 백호의 저지로 칼을 겨루게 되지요. 이유없이 달려 든 백호에게 연유를 물으니 백호의 가슴에서 뜻밖에도 언년의 몽타쥬가 나옵니다. "이 여인을 알고 있나?" 백호는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고요. 언년의 몽타쥬를 보고 넋이 나가 버린 대길을 향해 언년의 그림을 날리면서 백호가 언년의 몽타쥬를 두 동강이를 내버렸지요.
잠깐 옆길로 새는 얘기지만 언년의 몽타쥬를 두동강이를 내버린 백호는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이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네요. 감히 자신이 사모하는 아가씨 얼굴을 반토막을 내다니 참 어이없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상만은 훌륭했으니 웃으며 넘어가지요. 이렇게 어이없는 행동을 한 백호는 날아오는 창에 관통돼서 죽고 말았지요. 허망한 죽음이었네요. 갖은 폼은 다 잡더니 말이지요. 하긴 칠흑같은 머리카락 흩날리며 혜원을 노리던 자객 윤지처럼 허무하게 죽어버린 사람도 있으니 과히 억울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백호의 호패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려 간 대길이를 쫓아 설화마저 말을 타고 가버리고, 낙동강 오리알된 최장군과 왕손이 대길을 뒤따라가지요. 설화를 통해 백호가 고용된 양반집을 알아낸 대길은 김성환이라는 양반이 집안을 몰락시킨 철천지 원수 큰놈임을 알아 버렸습니다. 큰놈이를 향해 칼을 빼들고 달려간 대길은 언년이가 이미 훈련원 군관 송태하와 혼례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0년간 언년이 하나 찾겠다고 추노꾼의 험한 길을 살아왔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대길이에요. 송태하와 언년이를 지구끝까지 쫓아가서도 찾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네요. 물론 대길이 두 사람을 죽이려고 찾지는 않겠지요. 송태하의 과거 전력을 알고 있으니 연유라도 알고 싶을 겁니다. 사실 여부도 확인해야 할테고요. 대길이와 언년이는 이렇게 엇갈려만 가는데, 설화는 세상남자 다 안 믿어도 오라버니는 믿는다며, "여자가 믿는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진심을 고백하니 대길이 머리가 깨질판이겠네요.
한편 억지로 언년을 끌고 함께 동행한 송태하에게 언년은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어찌 노비가 되었는지, 도망노비도 아니면서 왜 쫓기는지, 또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무슨 일을 하려는지에 대해서요. 송태하는 혜원에게 과거 소현세자와 청에 볼모로 갔었던 일부터, 친한 친구 황철웅의 배신으로 군량미를 횡령한 누명을 쓰고 관노로 떨어졌던 일까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 주었지요. 노비신분을 벗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제주에 간다는 사실까지도요.
노비신분을 벗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느냐며 "노비보다 더 못한 것은 없답니다" 라며 혜원이 쓰개치마에서 옷고름을 한짝 찢어서 송태하에게 전해주었지요. 혜원에게 노비라는 신분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었어요. 노비였기에 양반도련님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았고, 오라비 큰놈이가 대길을 죽인 이유도 노비로 팔려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였으니까요. 도련님이 자기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지옥보다 더 큰 고통속에서 10년을 살아왔겠지요. 그만큼 혜원에게는 노비라는 굴레가 세상 어떤 것보다 큰 무게였지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언년은 송태하에게 옷고름을 뜯어 주었지요. 인두로 가슴을 지지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혜원 역시 가리고, 아니 지우고 싶은 이름 '노비 언년'이었을테니까요. 
제주로 가는 배에서 잠든 송태하의 이마에 새겨진 낙인을 옷고름 머리띠로 가려 주자, 송태하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도포를 벗어 언년이에게 덮어 주었지요. 잠든 척한 언년이었지만, 언년이를 내려다 보는 송태하의 눈이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눈빛이었지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동행으로 사랑 역시 뜻하지 않게 피어나는 모양입니다.
다음날 갑판에 서있는 송태하에게 도포를 얌전히 개켜 돌려주는데, 송태하의 도포 위에는 허리띠가 정갈하게 매듭지어져 놓여 있었어요. 혜원의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언년이가 송태하에게 물었지요. "이 뜻하지 않은 동행길에 나리의 무엇을 믿고 함께 해야 하냐?" 고요.
혜원이 뜯어준 옷고름은 노비신분을 벗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한다는 송태하를 믿고 함께 하겠다는 답이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송태하에게 새로이 피어나는 사랑도 담겼을 겁니다. 
저는 혜원의 옷고름을 보면서 혜원의 마음에 대해 두가지를 생각해 봤어요.
하나는 혜원이 송태하에게 일종의 호신용 부적, 혹은 뜻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아이를 길러보신 분이라면 아이의 첫배냇저고리를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첫배냇저고리를 간직하고 있다가 중요한 시험일에 저고리 고름을 떼서 안주머니에 꿰매주면, 시험을 잘 치른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 역시 두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요, 아이들 첫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지만, 왠지 어른들의 말씀을 허투루 들리지는 않아 보여요. 물론 옷고름을 떼서 넣어줘 보지는 않았지만요.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아니 노비가 아니라 그 보다 더 못한 것이 됐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제주까지 온 송태하였지요. 혜원은 그런 송태하의 진심을 읽었지요. 그래서인지 큰 일을 하려는 송태하의 앞길에 무운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봤습니다.
또 하나는 혜원이 송태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전설의 고향류 사극에서 나왔던 옷고름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광에 가두고는 가위를 가져와서 옷고름을 자르고는 내쫓아 버리는 내용이었어요. 옷고름이 잘린 여자는 소박맞은 여인이라는 표식이었어요. 옷고름이 잘려 나간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길거리에 있으면, 데려가서 혼례를 치뤄도 되는 일종의 재혼을 허락해 주는 관습이 있었어요. 물론 목을 매고 죽거나 자진해서 열녀문을 하사받은 집안도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며느리를 딱히 여겨서 그런 관습을 이용해 며느리에게 새 인생을 살게 한 집안도 있었지요. 혜원의 뜯겨진 옷고름은 그런 의미가 내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를 소박시키면서 송태하에게 마음을 주겠다는 의미로 말이지요.
조선의 한복은 색깔로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호패와 같은 역할도 했어요. 왕족과 관료, 양반과 평민, 그리고 천민의 복색이 신분에 따라 엄격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혜원이 소복을 벗고 갈아 입은 옷은 기혼여성을 의미하는 남색치마에 옥색 저고리였지요. 언년이 머리를 올린 연유 또한 그 복색에 따른 결혼한 여성임을 말한 것이었고요. 
여자가 아무데서나 옷고름을 풀면 안된다느니, 첫날 밤 옷고름을 풀어 준 낭군님이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조선 여인에게 있어 옷고름은 정절과 사랑을 상징합니다. 설화가 왕손이에게 옷고름으로 헛물을 켜게 장난을 치고, 주막의 큰 주모나 작은 주모 역시도 최장군이 옷고름을 풀어 줄 날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듯이, 옷고름은 여인의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것이지요. 혜원이 옷고름을 준 것은 송태하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큽니다.   
이렇게 송태하와 혜원에게는 사랑인지 믿음인지 아리송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혼례를 올렸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을 쫓는 대길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을까요? 애증? 그리움? 분노? 저는 슬픔이라고 생각됩니다. 삶의 의미까지 목적까지 상실하게 하는 깊은 슬픔같은 것 말이에요. 대길과 혜원의 엇갈린 사랑, 쫓기듯 위태로운 송태하와 혜원의 사랑, 그리고 해바라기 사랑을 하는 설화까지 드라마 추노는 혜원의 뜯긴 옷고름처럼 시청자들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휘젓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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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8 Comment 42
2010.02.03 12:03




드라마 추노의 중심 줄거리는 사람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도망노비를 쫓고, 또 그 노비를 쫓는 자를 쫓는 꼬리잡기 게임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 표면에 보여지는 그림에 불과합니다. 정말 드라마 추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지요. 추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시대를 거슬러,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거슬려 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드라마 추노에 흐르는 중심 줄거리는 대길과 언년의 엇갈린 사랑, 그리고 그들의 운명이 한 축을 이룬다면, 더 큰 기둥은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라 대변되는 하층민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쉬운 말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 민중운동사 측면에서 보자면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중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에 가장 관심이 크고, 또한 지지하고 있습니다. 추노의 주인공은 이대길이 될 수 밖에 없는 까닭과 대길이 꿈꾸는 세상을 지지하는 이유를 피력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이대길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글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혹시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링크 걸어 두겠습니다. ('추노' 대길의 비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제가 지난번에 이대길의 비밀과 정체, 그리고 돈의 행방에 대한 추측글을 올리면서 이대길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제 생각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저는 이대길 역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혁명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이대길이 추노꾼으로 번 돈의 행방과 월악산에 거사를 위한 산채를 마련하고 있을 가능성, 그리고 이대길이 언년이를 업고 가면서 했던 말을 단서로 제시했는데요, 다시 그 장면 대사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길: 과거에 급제할 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아주 높은 벼슬을 할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나라를 바꿔야지.
언년: 어떻게요?
대길: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거다. 평생...
추노의 쫓는다는 의미를 뒤집어 보니 참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이를테면 송태하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쫓는 입장으로 바꿔보니, 송태하는 그가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그에 반하는 인물들을 쫓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좌의정 일파와 그들이 대변하는 썩은 정치를 쫓게 되겠지요.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대길이나 업복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기득권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역모성을 띠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꿈꾸는 세상 역시 지배세력의 이해관계와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송태하의 문제는 정치적 힘이 없다는 점입니다.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고양이 잡으려다 도망가는 쥐의 형국입니다.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마찬가지에요. 힘없는 약자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따라서 대길이와 업복이 역시 이경식과 황철웅으로 대변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쫓김을 받는 신세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역으로 세사람, 혹은 세 이익집단을 바꿔놓고 보니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는 모두 조선의 현 정치세력의 적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네요. 마찬가지로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다르지만, 좌의정이라는 정치세력이 세 사람의 공동의 적이 됩니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왜 쫓고 쫓기는지 서로 모르고 있어요. 다만 돈때문에(대길), 대의를 위해(송태하), 개인적인 원한과 당으로부터의 명(업복이)때문에 쫓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요. 업복이의 경우는 대길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쫓고 있지만, 그가 화승총으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낼 인물들은 양반이라는 지배계층들이지요.

그런데 말처럼 세 사람이 손잡고 동지가 될 수있을까?에 대해서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과 계산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친구는 될 수 있으나 동지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적으로 한편이 될 수는 있겠지만요. 그 이유는 세 사람이 꿈꾸는 세상에 대한 이념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송태하를 대변하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보기로 하지요. 송태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철저히 양반이라는 제도권 틀안에서의 개혁을 꿈꾸고 있지요. 송태하는 언년이와 도망하는 중에, 그리고 정호빈(지인이라고만 했기에 극중 이름은 모르겠네요)에게 자신이 노비가 아님을 강하게 어필합니다. 이마에 노(奴)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지라도 그는 뼈속까지 양반이에요. 양반이라는 제도적 신분은 뛰어 넘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기존 신분질서 내에서의 개혁이에요. 일종의 위로부터의 혁명 즉, 부르조아 혁명의 범주에 속하지요. 
업복이는 송태하와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업복이가 꿈꾸는 세상은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 그 자체를 엎겠다는 것이니까요. 극단적인 아래로부터의 혁명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할 수 있지요. 아마 레닌을 만났다면 둘이 할 얘기가 많았을 사람들입니다. 추구하는 이념도 방법도 비슷할 수 있고요.
그럼,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과 송태하와 업복이가 추구하는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대길이 꿈꾸는 세상은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이에요. 그리고 나라를 바꾸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어요. 그의 말 속에는 신분제를 타파하겠다는 선진적인 혁명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송태하나 업복이 보다 혁신적이고 전진적인 이념을 가진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송태하나 업복이는 신분적인 한계는 뛰어넘지 못한 인물들이에요. 송태하는 양반이라는 신분계급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업복이 역시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만이 바뀐 새 신분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송태하나 업복이가 꿈꾸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요. 

제가 이대길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대길의 평등세상론을 지지하기 때문이에요. 이대길은 조선의 제도적, 정치적, 사회적 지배관계의 틀인 신분제를 혁파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길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선구자적인 인물이지요. 이것이 제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세 인물들 중 이대길의 생각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세 사람은 이념은 다르고 추구하는 세상도 다르지만 한 지점에서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세 사람의 적이 같기 때문이지요. 공통의 적이 좌의정으로 대변되는 권력집단과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임금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또한 방법적으로 불가피하게 물리적인 폭동, 혹은 충돌이 수반됩니다. 정치권력과 양반들을 설득해서 니네들 자리 다 내놔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유혈사태까지 불사하겠지요.
결국 지배계급의 거대한 힘에 의해 이들은 좌절하고 꺾이고 말 것입니다. 성공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겠지요. 근접하게는 동학농민전쟁이나 장길산, 임꺽정이 관군에 의해 토벌되었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길거리 사극 추노는 비록 이해관계와 목표는 다르지만  이렇듯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같은 작은 물줄기들이 강으로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는 어느 한 지점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습니다. 온 몸으로, 죽음으로 항거했던 민초들의 움직임이 비록 당시에는 강줄기를 바꿔놓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저항이 모여 미세하게나마 강둑을 허물었고, 끝내는 바다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났음을 말하는 겁니다. 

조선은 일제에 의해 무너진 것만은 아니었어요. 끊임없이 항거해 온 민중들의 저항이 조선이라는 완고한 틀을 조금씩 무너뜨렸던 것이지요. 작은 돌멩이들의 외침들이 쌓이고 쌓여, 실개천같은 물살이라 할지라도 강둑을 무터뜨려 왔던 것이지요. 신분없는 평등사회를 꿈꾸고, 부패정치를 바로 세우려 하고, 신분의 벽에 맞서 싸운 수많은 대길이와 송태하, 그리고 업복이들에 의해서요. 그리고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이대길, 송태하, 업복이들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21C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한 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신분없는 평등세상에서요.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세 인물들 중 가장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평등론자 이대길이 꿈꿨던 세상에서 말이지요.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이 이대길일 수 밖에 없고, 또한 제가 이대길이 꿈꾸었던 세상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대길이 한낱 추노꾼에 불과하지는 않은 인물일 것이다라는 전제하에서지만요.
<관련글 : '추노' 대길의 비밀, 돈은 어디로 갔을까? (http://lovetree0602.tistory.com/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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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3 Comment 36
2010.01.30 00:23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처음 의심을 품었던 것은 주인공 이대길의 진짜 정체가 뭘까?였어요. 그리고 4회정도 지나면서 거의 심증을 굳혔지요. 이대길의 정체가 '단순한 추노꾼이 아니다' 라는 쪽으로요. 사실 지난주에 대길의 비밀에 대한 글을 올리려다 시기를 놓쳤는데, 추노 8회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대길의 대사가 나와서 의심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정리를 해 봤어요. 제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치중하고, 또 다음이야기를 추리해 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은 짧은 대사 한마디에도 복선이 깔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난 글 <기생행수의 정체>에 대한 글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셨는데, 댓글을 보니 좌의정을 의심하는 분들이 많네요. 저도 의심가는 대목은 있지만, 좀더 지켜 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오늘은 대길의 정체에 관해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는 생각을 말할게요.
저는 대길이 단순한 추노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망노비를 잡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귀로 소문이 나 있지만, 대길에게는 추노꾼 이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거슬러 가면서 그 비밀을 하나씩 풀어 가보도록 하지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대길은 아직은 정치적 성향은 없지만,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혁명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대길이 왕이 되겠다 혹은 권력을 잡겠다는 역성혁명의 의미는 아니에요. 아직은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세상이지요. 언년이와 함께 평생 살 수 있는...
대길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증거를 기억나는 대로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월악산 짝개(짝귀)와 대길의 관계 
국경근처에서 대길패에 의해 붙들려 온 노비들 가운데 업복이와 노비모녀가 있었지요. 13살 어린 딸을 나이든 영감양반 수청을 들게 해서 도망쳤던 노비였지요. 수청을 드는 날 복면을 쓰고 그 양반집에 침입해서 대길은 모녀를 구하고 돈을 주며 월악산 짝개를 찾아가 안돈하고 살라고 했지요. 여기서 짝개는 짝계인지, 짝귀인지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일인물인 것 같아요. 짝귀는 송태하와 언년이 산중에서 만난 산적들이 울궈먹은 이름인 걸로 보아 월악산 일대를 주름잡는 유명한 산적 우두머리로 보입니다.

짝개라는 이름은 땡중 명안스님과의 만남에서도 한 번 언급이 되었어요. 명안스님의 포스로 보아 산속 외딴 절에서 염불이나 외우고 있을 분은 아닌 것 같아요. 무공도 있고, 과거 남대문에서 놀던 어쩌고 하는 걸로 보아 왈짜패거리에 몸담았던 전력이 있을 것도 같고요. 송태하를 놓친 대길이 절을 떠나면서 명안 스님에게 "월악산 짝개 만나거든 안부나 전해주쇼" 라는 말을 했는데요, 명안스님과 짝개라는 인물, 그리고 대길이 관계가 석연치 않아 보였어요.
월악산은 산세가 험하고 예로부터 산적과 화적떼가 들끓었던 곳이에요. 소설 장길산이나 임꺽정을 보면 월악산이 거사를 준비하는 소위 녹림거사들의 산채로 은둔했던 곳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월악산 짝개(짝귀)라는 인물은 단순한 산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길이 추노로 받은 거금은 어디로 갔을까?
제가 가장 크게 의심을 품었던 부분은 대길이 관리한다는 돈문제에요. 대길은 한양 좌포청 오포교(이한위)로 부터, 잡은 노비 한 사람당 30냥을 기본으로 수당을 받았지요. 노비에 따라 금액이 100냥짜리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대길패거리 왕손이와 최장군에게는 15냥씩 받았다며 중간에서 돈을 횡령하고 있어요. 그리고 받은 돈에서 반 이상을 떼서 이자돈을 놓고 있다고 하는데요, 돈에 관심없어 보이는 최장군은 별말을 하지 않지만, 계집질에 '하루 즐겁게 놀자' 주의인 왕손이는 불만이 많아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 돈이나 맘껏 써보고 죽자고요.
그런 왕손이에게 대길은 훗날 안돈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듯 안심을 시켜 왔지요. 왕손이는 언니 대길이나 최장군에게 삐딱하게는 굴지만, 절대적으로 두 언니들을 따르는 인물이기에 크게 돈에 대한 의심을 품지는 않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대길이 의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어요. 좌의정 이경식대감으로부터 송태하를 추노하라는 임무를 맡으면서 대길이 흥정한 돈은 오천냥이었어요. 오천냥은 당시로서는 눈 돌아갈 엄청난 큰 돈이에요. 그런데 대길은 왕손이나 최장군에게 500냥짜리 일이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여기서 드는 의문 한가지, 대길 패거리는 천지호 패거리보다 일거리도 많았고, 그 바닥에서는 최고였는데 그동안 벌어들인 돈은 어디로 갔을까?에요. 꽤 많은 돈을 모았을 듯 싶은데 그렇게 큰 돈을 요즘 말로 사채시장에 풀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5천냥의 거금과 그동안 번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저는 이 돈이 월악산 혹은 다른 거사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년에게 말한 대길의 꿈
이번 8회에서는 대길이 설화를 업고 가는 장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대길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흘렸어요. 술 취한 설화를 업고 가면서 대길은 언년에게 약속했던 과거를 회상했었지요.
대길: 과거에 급제할 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아주 높은 벼슬을 할거야
언년: 그 다음에는요?
대길: 나라를 바꿔야지.
언년: 어떻게요?
대길: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거다. 평생...
"나라를 바꾸겠다", "양반, 상놈 구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는 대길의 말은 대길의 정체 혹은 비밀을 암시하는 중요한 중요한 열쇠에요. 대길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글공부했을 때부터 마음에 품었어요. 그 세상이라는 것은 언년이와 떳떳하게 신랑 각시하며 살 수 있는 신분없는 세상이었던 거지요. 대길이 10년간을 언년을 찾으러 다니는 이유는 집안을 몰락하게 한 증오심이 아니에요. 언년이와 함께 살고 싶어서에요.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년이를 찾으면 평생 살 수 있는...

이런 미심쩍은 일들로 짐작컨데, 대길은 월악산에 최장군, 왕손이, 그리고 언년이와 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길이 언년을 찾으면 언년이와 함께 살 그들만의 신분없는 세상이 필요하지요. 대길은 지금 그 세상을 월악산 어디엔가 마련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요. 밭도 있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말이지요. 대길이 추노꾼을 해서 감추고 있는 돈은 그것을 위해 쓰고 있다는 게지요. 혹은 새로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사자금으로 만들고 있을 지도 모르겠고요.
현재까지는 전자같습니다. 대길은 정치적 인물은 아니거든요. 대길은 아마 송태하를 쫓는 과정에서 정치의식도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태하를 쫓는 좌의정 이경식과 황철웅, 송태하가 구하려는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을 둘러싼 정치판의 피바람이 대길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지요. 게다가 이경식이 대길을 살려둘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천지호를 이용해 제거하려 들겠지요. 뒤가 구리니 닦으려 들거라 이말이지요. 이경식이 자신을 죽이려 들면 대길과 이경식이 적이 된다는 것이지요. 좌의정 이경식은 현 조선의 정치실세에요. 좌의정의 잔혹한 음모에 대길이 정치판에 대한 환멸에 눈을 뜰 가능성도 크고요.  
대길이 꿈꾸는 양반, 상놈없는 세상이 어느 한 편으로는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수 있지요. 정치가 개판이니 민심이 흉흉하고, 돈있으면 개똥이도 큰놈이도 양반되는 세상, 바로서지 못한 정치로 세상은 곪아가고, 다수의 평민들이 노비로 전락하고,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노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현 조선이라는 양반사회의 병폐가 낳은 현실이에요. 대길이 바라는 세상도 송태하가 바라는 세상도, 업복이가 바라는 세상도 아니지요. 이런 점에서는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어느 한 부분은 통하고 있지요. 송태하의 대의와 대길의 신분없는 세상, 양반세상을 엎고 종놈세상을 만들자는 업복이 세 사람이 어떻게 합일점을 찾아가는지를 보는 것도 드라마 추노의 큰 줄기가 되겠지요. 과거 송태하의 부하 장수들의 은밀한 움직임도 여기에 새로운 변수들로 떠오르고 있고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대길의 정체지만, 10년을 찾아 다닐 정도로 대길의 마음이 깊은 것을 보면, 대길이 언년에게 한 약속도 대길은 지키고자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를 바꾸겠다는 꿈 말이지요. 위의 의심가는 점들을 비추어 볼때 대길이 한낱 개차반 추노꾼만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추노꾼이 되기 전 대길의 행적도 묘연하고, 대길이 무공을 누구에게 익혔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지요. 글만 읽었던 양반집 도령이 길바닥 무술만으로 지금의 높은 무공을 다 익히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대길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거스를 수 없는 물줄기를 거슬러 가려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송태하와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사람을 쫓는 대길의 눈빛에는 새로운 세상을 쫓아 달려가는 모습도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앞서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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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14:07




추노 7회는 이다해의 노출신 모자이크 처리로 떠들썩해져 버렸네요. 하지만 그것은 추노의 줄거리와는 다른 이야기이니 저는 별도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으니까요. 이번회를 보면서 업복이에게 박병기를 죽이라는 지령을 내린 '그분'에 대한 의심을 품은 인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바로 기생행수 찬(송지은)이라는 인물인데요, 물론 제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간 몇장면 나오지 않았음에도 범상치 않아보이는 포스가 눈에 띄더군요.
추노 7회의 중심 줄거리는 대길이 언년을 향해 칼을 날리고, 송태하 뒤에 말을 타고 달려가는 언년의 옆모습을 언뜻 봐버린 대길이겠지요. 최장군이 잘못봤다고 말하지만 대길은 반드시 송태하를 쫓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지요. 술취한 설화를 업고 가는 대길과 부상당해 의식이 혼미해져 가는 혜원을 업고 가는 송태하의 교차되는 모습은 어긋나기만 하는 대길이와 언년이의 운명을 말해주듯 불길하기만 합니다. 더구나 언년이는 목숨같은 조약돌을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의식을 차리고 언년이가 다시 길을 되짚어 조약돌을 찾으러 갈 것만 같네요. 그건 그렇고...

제가 추노를 보면서 유심히 보고 있는 인물이 몇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좌의정 이경식을 모시는 기생행수 찬(송지은)이라는 인물이에요. 큰 주모 조미령과 작은 주모는 극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감초역할이라 딱히 인물에 대한 궁금증은 없는데, 기생행수는 그 과거나 현재가 뭔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기생행수 찬이 드라마 추노에 처음 등장했던 신은 2회였는데, 대사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잠시 2회 장면으로 거슬러 가서 이경식이 기루에서 기생행수와 있었던 장면에서의 대사를 보도록 하지요. 당시 좌의정 이경식은 제주도의 참담한 상황이 그려진 그림이 나돌던 사건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때였지요. 그림을 본 인조는 "불쌍한 아이가 아닌가?" 라는 말로 원손 석견에 대한 마음을 내 비칩니다. 인조의 오른팔인 좌의정은 인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요. "죽여라" 였거든요.
원손을 적통 세자로 옹립하려는 소현세자측의 대신들은 상소를 준비하고 임금께 주청하려는 모임을 가집니다. 이때 이경식이 있던 곳이 찬의 기루였는데요, 기생행수 찬이 좌의정의 안색을 보며 말을 건넸지요. 수심이 가득하다면서요. "이런저런 일들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가 봅니다"
기루라는 곳은 오늘 날로 치면 방송국이나 신문사보다 정보가 빠른 곳이에요. 저잣거리와 마찬가지로요. 찬의 고급기루는 기루라는 성격상 조정의 상황을 조정대신보다 빨리 알 수 있기도 하는 정보의 요지이기도 하고요. 좌의정은 이무기같은 기생행수에게 "지들이 용인줄 아는 게지. 기어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려 하니" 라고 받아치지요. 기생행수는 "대감께서 하늘이신데 뉘가 있어 그 하늘을 탐한다 말이옵니까?" 라며 입에 사탕발림같은 말을 합니다. 좌의정을 모시는 기생이 이정도의 영리함은 갖춰야 겠지요. 그러자 좌의정 이경식이 묻습니다. 탐하는 자가 있다면 어찌햐면 좋겠느냐?고요.
그때 기생행수의 대답이 너무 강렬해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기생행수는 씨익 웃으며 콧소리를 섞어 "죽여야죠~"라는 대답을 거침없이 해버립니다. 소리내서 웃는 좌의정 이경식의 이어지는 대사는 더 날카로웠어요. "무서운 년이로고..."
좌의정의 무서운 년이라는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남더군요. 권력의 정점에서 능구렁이처럼 속을 다 아는 이경식이 사람보는 눈 역시 예사롭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기생행수는 "나랏일이라는 게 별 게 있겠습니까? 죽은 사람을 죽고 살 사람은 살아야죠" 라며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 버리지요. 새로 들어 온 아이의 살풀이 춤이나 감상하시라면서요. 이어 살풀이 춤과 원손을 옹립하려는 대신들의 회동에 관원들이 난입해 도륙을 내는 장면이 교차되어 나왔는데요, 귓속말로 기생행수가 좌의정에게 어떤 말을 하는 장면도 보여주기도 했었지요. 

다시 기생행수가 등장한 신은 이경식과 송태하의 대면 장면에서 였어요. 정자에서 송태하를 추노하라는  이경식 뒤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는데요, 기생행수는 대길의 배포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요. 특히 대길이가 "벼슬하시는 분들의 약조는 믿지 않는다"며 추노값을 선불로 절반을 달라며 몸값을 흥정하는 대화를 재미있다는 듯이 듣는 기생행수의 표정이 그저 재미있게 듣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이번 회의 등장은 조금 더 의심스럽게 했어요. 업복이(공형진)와 끝봉이(조희봉)가 앉아 있는 사이를 가르며 화살이 꽂혀들었지요. 언문으로 쓰여진 편지와 함께... 글을 모르는 업복이는 초복이에게 읽어달라고 했는데, 지령문은 박병기라는 양반을 죽이라는 것이었어요. 박병기라는 자는 노비를 면천시키고도 노비문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후에 전노비의 재산을 몰수하는 죽일 놈이었지요. 그리고 지령문에는 술시에서 해시 사이에 서소문으로 갈 것이며, 품에 천냥 어음이 있으니 거사용도로 쓰라고 적혀 있었지요. 호위무사를 두 명 데리고 다닌다는 말도 해주고요.
그런데 그 문제의 인물 박병기를 당일 저녁에 만난 인물이 좌의정 이경식과 그 수하 한 사람, 그리고 기생행수 찬이였다는 것이에요. 좌의정은 박병기에게 5만냥어치의 물소뿔을 천냥에 넘기라는 협박을 하고 갔고요. 관직을 주겠다는 것을 빌미삼아서요. 그 수결을 마지막에 하게 한 인물이 기생행수였고, 기생행수가 어음을 직접 전달했지요.

여기서 강한 의문이 들지요. 우선 업복이에게 지령을 내리는 그 분에 대한 정체에요. 저는 기생행수가 그 분이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그 분은 노비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다고 했는데, 양반도 종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이 비밀지령이 언문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에요. 언문(한글)은 조선시대는 양반남자들 아닌 여자들이나 기생들이 주로 배웠어요. 비밀지령이 언문으로 쓰였다는 것은 의문의 '그 분'이 언문을 익힌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병기가 술시와 해시 사이에 서소문 쪽으로 갈 것이라는 것, 그의 품속에 천냥짜리 어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기생행수이지요. 좌의정과 그 수하는 용의선상에 놓기에는 가능성 제로고요.
따라서 업복이와 노비들의 당의 당수인 그 분이 기생행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거지요. 기생행수 찬의 과거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렇듯 의심가는 것을 보면 곡절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기생행수가 눈도 깜짝 하지 않고 "죽여야죠" 하는 부분과도 통하고요. 노비들의 당은 양반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에요. 양반들을 다 죽이고 천한 사람이 양반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당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소현세자측의 양반이 되었는 이경식측이 되었든 노비당의 목적은 양반들을 모조리 죽이고 새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번 회에 좌의정과 기생행수의 대사 중에 김병기를 보내고 좌의정이 기생행수에게 "네년이 사내로 태어났으면 나라를 말아먹었을 거야" 라고 하지요. 기생행수가 "나라말아 먹기에는 사내보다 계집이 더 수월하답니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을 모르시나 봅니다"라며 좌의정 이경식을 손에서 가지고 노는 듯 해서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나라 말아 먹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좌의정 이경식에게도 호락해 보이지 않는 기생행수 찬의 정체 또한 드라마 추노에서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업복이에게 암살지령을 내린 '그 분'의 정체는 박병기가 암상당한 당일 행적을 볼 때, 기생행수가 가장 유력하니까요. 또한 아직 그녀의 과거사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생행수 찬이 기생이 된 연유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고요. 만약 수장이 아니라면 중요 핵심인물일 수도 있겠고요. 물론 제 추측이지만요...
권력의 노리개로 살아가는 기생이라는 신분은 양반들의 추하고 구린내 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는 특수계층의 천민들이에요. 기생들의 눈에 비친 양반사회는 권력의 암투와 피비린내 나는 정치음모가 판치는 거짓세상이지요. 그들의 사랑이 하룻밤 육체를 탐하는 거짓사랑이듯이요. 수행행수 찬에게 양반사회는 모순이 가득찬 환멸적인 세상이일 거예요. 양반사회를 엎겠다는 노비당과 기생행수가 무관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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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6 Comment 59
2010.01.23 06:21




빼어난 영상미, 화려한 액션, 애절한 사랑이야기, 탄탄한 짜임새까지 드라마 추노를 보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매회 주인공들의 과거 회상신을 적절하게 삽입하면서 시대적 상황과 정치판, 그리고 주인공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적절히 풀어놓는 방법 또한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추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길이와 언년의 해후겠지요. 간당간당 엇갈리는 대길과 언년이 때문에 속이 탑니다. 하지만 시청자의 바람대로 일찍 만나게 해줄 것 같지는 않네요. 대길이 언년을 찾는 과정을 더 애간장을 태우며 보게 할 것 같아요. 언년이와 태하의 감정이 끌리는 과정도 더 보여 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언년이와 송태하의 감정선은 솔직히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세 사람의 애정라인이 하나의 줄기라고 하니까, 그저 억지 춘향으로 꿰맞추면서 보려고 하는데도 감정몰입은 전혀 되고 있지 않습니다. 걸찍한 대길패의 대사와 저자거리 민초들의 구수한 만담같은 대사를 듣다가, 송태하와 언년이 두 사람으로 넘어 오면 이상하게도 집 나온 아씨와 머슴같은 느낌만 드니 말이에요. 송태하를 연기하는 오지호나 언년이 이다해의 긴 대사에서는 특히 심해지는데요, 마치 책을 읽는 듯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은 저만 그런가 싶네요.
특히 이다해의 경우는 대사톤이나 표정은 전혀 살아있지도 못하고 대사에 감정을 제대로 싣지 못하고 있으니 소복을 참 잘 입혀놓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소복을 보면 죽음이 연상되듯 연기나 대사, 그리고 표정이 살아있지 못한 이다해의 언년이라는 캐릭터가 죽어있는 것 같으니 말이에요. 물론 예쁘기는 하더이다만...
추노 6회에서 언년이(김혜원)의 소복에 송태하가 그림 한폭을 그려 주었는데요, 마치 눈 속에 매화꽃이 피어 있는 듯한 멋진 그림이었지요. 저는 송태하가 언년의 소복 위에 그려준 그림을 보며 소복과 그림에 언년의 캐릭터를 대변하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년의 인생 또한 달라짐을 의미하고요.  

언년이가 소복을 입은 이유
언년이가 소복을 입기 전에 입었던 옷은 혼례복이었어요. 혼례복을 벗고 남장을 하고 언년이가 찾아 간 곳은 대길이를 위해 불공을 드려 오던 절이었지요. 절까지 오는 동안 우여곡절 속에 송태하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지요. 언년을 만난 송태하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고요.
언년이 절을 찾아 온 이유는 대길의 기일 불공을 드리기 위함이었어요. 언년은 명안스님께 머리카락을 잘라 주면서 매년 그분 기일에 젯상과 불공을 드려줄 것을 부탁하고 길을 나서지요. 집을 나설 때와는 다른 소복을 입고요. 그런데 언년이는 왜 소복을 입었을까요?

대길이 10년간을 언년을 품고 살듯이 언년의 마음에도 지아비는 한 사람, 평생 함께 살겠다던 도련님 대길이에요. 언년이 혼례를 치루던 날, 언년이 합배주를 마시고 싶었던 사람은 대길이었겠지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화마가 삼켜 버린 도련님이지요.
언년은 혼례식날 최사과와 혼례를 올린 게 아니었어요. 대길이와 혼례를 올렸던 게지요. 마음으로나마 도련님과 그렇게 혼례를 올린 게지요. 대길이 준 조약돌을 품고서요. 그렇게 마음으로 혼례를 올린 지아비는 죽었고, 지아비 대길을 위해 언년은 소복을 입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소복을 입은 순간 언년이 자신도 함께 도련님을 따라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마 언년이는 3년상이 아니라 평생상을 치룰 생각이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죽을 곳을 찾으러 길을 나섰을 수도 있겠고요. 드라마에서는 언년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모르겠지만요. 이렇듯 언년의 소복은 평생 지아비상을 치루려는 대길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을 의미합니다. 물론 대길과 함께 언년이 자신도 죽었음을 의미하고요.  
그런데 언년이가 대길을 위해 입었던 소복에 꽃그림이 그려집니다. 언년을 쫓는 호위무사 백호와 최사과의 사람들이 언년을 쫓고, 저자에서 언년을 잡으려는 군졸들의 목을 따는 자객 윤지(윤지민)에 의해 새하얀 소복에 핏방울이 튀었지요. 핏방울을 감추기 위함이었지만, 언년의 소복에 그려진 꽃그림은 언년의 인생에 다른 것이 들어옴을 암시합니다.
대길을 상징하던 하얀 소복에 숯으로 그림을 그려준 송태하가 들어온다는 온다는 복선이 깔린 것이지요. 저는 그 그림을 보면서 정말 감탄 또 감탄 했어요. 송태하의 예인 기질도 놀라웠지만, 어떻게 이렇게 예술적으로 복선을 깔았는지 제작진과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더군요.
송태하가 언년의 소복에 숯으로 매화나무를 그렸는데요, 소복에 튀었던 핏방울은 한떨기 붉은 매화꽃으로 피어났지요. 물론 실제 핏방울이라면 그렇게 선명한 붉은 빛을 띠지 않겠지만, 아름다운 의상을 위해 그런 것은 넘어가기로 하지요. 여하튼 매화꽃이 핀 송태하의 그림은 예술작품이었어요. 

소복 위의 꽃그림, 송태하가 들어오다
소복에 그려진 그림은 언년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숯은 죽음의 또 다른 상징이에요. 나무가 숯이 된 순간 숯에는 나무라는 어떤 과거사도 상실되고, 숯이라는 전혀 다른 물질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언년의 소복은 더 이상 소복이 아닌 것이 돼버린 것이지요. 송태하의 그림 하나로 말이에요. 마치 죽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대길과 함께 죽어버린 언년이 혜원이라는 인물로 태어난 것이에요. 언년은 6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김혜원이라고 밝혔지요. 죽음과 같은 인생을 살겠다며 소복을 입은 언년을 고목에서 피어 난 꽃송이처럼 살아있는 김혜원으로 탈바꿈시킨 훌륭한 복선이었어요. 
또한 송태하를 위한 복선 역시 숯처럼 진하게 깔아 주었어요. 소복을 입은 언년에게 송태하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지요. 그런데 언년의 소복에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언년에게 송태하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지요. 대길과 언년 사이에 대길의 연적이 될 송태하라는 인물을 예술적으로 그린 최고의 그림이었어요. 또한 핏방울이 피어낸 꽃은 소복만큼이나 슬픈 언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고요.  
위기의 순간마다 언년을 구해 준 송태하가 언년의 마음에 조금씩 들어 오게 됩니다. 조약돌이 대길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송태하는 소복의 그림과 같아요. 대길을 향한 일편단심 소복에 송태하를 덧 입힌 꽃소복은, 언년의 대길에 대한 순정 속에 송태하에 대한 감정이 꽃처럼 피어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가장 멋진 의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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