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서 배종옥'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3.03.2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무죄, 그러나 송혜교는 유죄인 이유 (6)
  2. 2013.03.22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의 복수, 이별의 웨딩드레스 (16)
  3. 2013.03.21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의 눈, 색과 빛으로 보여 준 결말암시 (11)
  4. 2013.02.2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송혜교, 시리도록 아픈 그녀의 눈빛 (5)
  5. 2013.02.22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김태우, 냉혈함 속에 감춘 쓸쓸한 바람 (32)
2013.03.28 11:31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픕니다. 오수(조인성)와 왕비서(배종옥)가 떠난 자리를 느껴가는 오영(송혜교), 혼자라는 외로움과는 다른 쓸쓸함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21년간 싸워왔던 외로움과는 다른 허허로움입니다.

그때는 미움이라도 있었습니다. 엄마와 오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미움도, 기다림마저도 가질 수 없는 오영입니다.

 

'봄날은 간다'를 보며 장면을 설명해 주고, 초콜렛을 입에 넣어주며 입 가장자리를 닦아주던 오수는 없습니다. 시금치국을 끓여주고, 보이지 않는 오영을 위해 컵 하나까지, 음식이 놓인 방향을 매일 설명해주던 왕비서도 없습니다. 오영을 외롭게 하는 빈자리는 오영을 지독하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오영은 두 사람의 자리를 더 크게 느낍니다. 20년 넘게 함께 살아 온 왕비서의 부재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오수의 빈자리는 그를 사랑하는 오영의 그리움입니다. 왕비서가 없는 불편함은 깨진 유리잔에 발을 다치는 소소한 것만은 아닙니다. 미워했던 만큼 사랑했던 왕비서였음을 오영은 그녀가 떠난 후에야 알아갑니다.

장변호사에게 넌즈시 왕비서의 안부를 물어보는 오영, 왕비서의 목소리가 밝고 좋았다는 말이 왠지 서운하게 들립니다. "다행...이네요", 가늘게 떨리는 오영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서운함, 그리고 왕비서에 대한 그리움(사랑)이었습니다. 오영없이는 하루도 못살거라는 왕비서, 영이 너밖에 없다는 왕비서가 잘 지낸다는 말에 쓸쓸함을 느끼는 오영이었죠. 

 

집을 나온 왕비서(배종옥)가 교차로에서 어디로 향할지 몰라 멍해있는 모습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영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누구에게 가야할지, 한번도 영이를 떠날 생각을 못했던 왕비서는 패닉에 빠져 허둥대고 있었지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왕비서, 빈껍데기가 된 듯한 왕비서가 보여서 마음이 쓰라리더군요.

인생을 다 걸고 사랑했던 영, 그런 영에게 내쳐지고 그녀는 길잃은 아이처럼 세상이 막막해 보입니다. 헛개비처럼 휑한 눈으로 왕비서의 상태를 보여주는 배종옥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바람빠져 버린 풍선처럼, 온몸에서 모든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린 듯한 넋나간 모습이 왕비서라는 인물의 영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편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식당에서 쓸쓸히 혼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왕비서, 그녀 자신보다 영이를 더 사랑했던 왕비서, 그녀의 영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엄마였습니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아줌마, 눈이 안보여요"했던 날부터 영이는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영이의 눈을 망가지게 방치하면서까지 영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왕비서, 용서하기 힘든 일도 그녀가 "난 엄마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누그러지게 합니다.

엄마라는 단어는 사람을 묘하게 약하게 합니다. 밑도끝도 없이 왕비서를 믿고 싶었던 근저에는 왕비서가 영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을 겁니다. 

 

"나는 눈을 잃고 당신은 당신 인생 전부를 걸고 사랑했던 딸같은 나를 잃고, 계산은 정확해야죠", 곁에만 있게 해달라는 왕비서를 영은 매몰차게 나가라고 하죠. "그럼 떠나야지, 왜? 난 엄마니까... 엄마는... 자식들한테 지는게 엄마니까".

오영의 집을 떠나면서 장변호사에게도 왕비서는 엄마임을 잊지 않습니다. 가끔 영이 소식 알려달라면서도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겠다면 말하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자식 걱정시키는 부모에요".

 

오수 역시 오영을 목숨만큼 사랑하게 되었죠. 사랑따위에 목숨걸지 않았던 오수, 그는 78억대신 오영의 사랑을 가지고 떠납니다. "내가 널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아니 진심임을 78억 가방으로 또 고백하고 떠나는 오수였습니다.

"사랑했어. 널 옆에 두고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니가 날 속인거 무죄야. 넌 살기 위한 방법이었고, 난 행복할 때도 있었으니까". 

오빠라고 속인 오수에게 오영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오영을 사랑해버린 오수, 그 사랑에 형량을 구형할 수는 없습니다. "널 버린 엄마지만 널 한 번이라도 찾아왔던 걸 기억하기 바래. 그리고 이젠 그만 희주씨에 대한 죄책감에서도 벗어나길 바래, 네 자신을 오래 미워했잖아, 스스로도 지칠만큼".

영을 두고 간 엄마와 오빠는 영을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오수를 버린 엄마는 그래도 오수가 어떻게 사는지 찾아라도 봤지만, 영의 엄마는 영이가 아픈데도 찾아오지도 않았죠. 물론 아버지와 왕비서때문에 못 온 이유도 있었겠지만, 마음이 더 다쳐있는 영이 오수를 위로합니다. 오수의 자책감까지도 말이죠.  

 

"사랑했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수와 왕비서에게 영이 마지막 한 말입니다. 오수에게 78억을 주고, 왕비서에게는 죄를 묻지않고 내보내는 것이 오영의 용서라고는 보이지 않더군요. 수술을 앞두고 신변정리에 더 가까워보였으니까요. 오수에게 가장 필요한 돈을 주고, 왕비서에게도 그녀가 가진 주식과 횡령한 돈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식으로 두 사람을 내보낸 오영, 그녀가 두 사람을 용서하며 무죄를 내렸지만, 오영은 유죄입니다.

목숨 대신 사랑을 택한 오수, 자신의 인생 대신 영의 손발과 눈이 되어온 왕비서-(오수의 사기의도와 왕비서의 영의 눈에 대한 부분은 두 사람에게 오영의 곁에 머물지 못하게 한 것으로 형벌을 내렸다고 치고)- 오영은 자기 사랑은 방치 내지는 유기를 하려합니다.  

오수와 왕비서를 사랑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수가 걸어둔 풍경소리에 벌써부터 오수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왕비서가 잘지낸다는 말에 서운해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오영은 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하죠. 오수와 왕비서의 사랑에는 무죄를 선고했으면서도 오영은 그들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막으려고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오영이야 말로 유죄인 거에요. 이제는 오영이 사랑할 때입니다. 오영이 무죄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왕비서의 사랑을 엄마이고 싶은 그녀의 사랑 자체로 받아들여줘야 하고, 오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닫지말아야 할 오영입니다 

별장에서 잠들어있는 오수의 이마, 코, 입술을 만져보고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기억하려고 했던 오영, 사기꾼 오수로 떠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오영에게 키스를 하고 오영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던 오수처럼 그녀가 이제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외롭고 힘든 오영이었지만,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해 준 왕비서, 목숨을 걸고 사랑한 남자가 곁에 있었던 오영, 그런 사랑을 받은 오영이 이제는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아닐런지.... 

진정한 용서는 이해가 아니라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을 할 때는 행복합니다. 돈때문에 오빠 행세를 했던 오수였지만, 또 그것때문에 괴로웠지만, 오영을 사랑한 오수는 행복했습니다.  첩질한다며 가족들이 외면했고, 영의 눈을 멀게 방치한 형벌을 매일매일 괴롭게 받으면서도, 영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뇌종양을 이기고 살아있는 영을 보는 것이 왕비서는 행복했습니다.  

오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영, 오빠가 아니라 돈때문에 온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도 끝내려는 영,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해왔지만 그녀를 사랑할 줄은 몰랐던 영, 영은 그래서 행복하지 못합니다.

수술을 하고 살아나고 시력을 되찾는다고 해도 영은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없는 영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일 뿐입니다. 오영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존재이유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영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영이 행복했으면 좋겠군요.

사랑하는 영을 목숨을 걸고, 혹은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오수와 왕비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말합니다. 사랑하라고, 사랑은 무죄라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유죄라고...

직 오영 그녀가 유죄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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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2 12:24




"봄 냄새 난다,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어", "아니... 난 니가 있어서 별로".

"닌 니가 있어도 바람이 너무 차던데...이 봄도 지난 겨울처럼 추우려나 보다".

별장으로 향하는 차에서 오영은 거짓말로 오수와의 이별을 준비합니다. 사실 오영에게 지난 겨울만큼 따뜻했던 겨울은 없었습니다.

겨울과 함께 찾아온 오빠를 봄과 함께 떠나 보내려는 오영입니다. 오빠로 왔다가 오빠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오영이 사랑해 버린 남자 오수로 떠나는 남자. 그 남자를 떠나보내면 올 봄은 지난 겨울보다 더 추울 것 같습니다.  

영이는 이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하려고 합니다. 20년 넘게 자기 곁을 지키며 엄마가 되고자 했던 왕비서를 보내고, 회사회장자리도 내놓으며, 모든 재산은 복지원에 기부한다는 유언장도 새로 작성했지요. 이명호 본부장에게는 문자로 파혼통보를 보냈죠. 오수에게는 78억을 줄 생각입니다. "너 돈 많잖아?",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듯한 희선의 오지랖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사정과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많은데 78억쯤은 줘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기가 차더군요;; 오수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알지만.

 

진소라의 음성메시지를 받은 오영, 오수와 왕비서의 대화를 듣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버리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친오빠가 죽었다는 말에도 슬퍼할 수조차 없는 영, 오수에 대한 사랑이 컸던 만큼 분노도 컸습니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오수를 여전히 사랑하는 오영 자신입니다.  

오수가 들려준 만개의 풍경소리, 함께 음식을 만들고 눈밭을 뒹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보지않겠다며 살고 싶게 만든 오수에 대한 사랑이 오영을 힘들게 합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 한사람, 그 사람이 78억 때문에 영과 오빠와의 추억을 훔치고 속인 것이 부들부들 떨리고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주었던 따스한 손은 진심이었음을 알기에 더 힘이 드는 영입니다.

 

왕비서에게도 비슷한 감정인 영이죠. 20년 넘게 자기곁을 지켜준 사람, 법정대리인이지만 늘 엄마가 되고 싶어했던 사람, 눈을 멀게 방치하고 치료를 받을 수 없게 했지만, 혹독하게 점자를 가르치고 회사일을 보게 한 여자, 영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주는 사람,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으면 한 밤중에 조용히 이마를 짚어보고 한참을 한 숨만 쉬고 나가는 왕비서는 영이 죽도록 증오해 왔으면서도 의지해 온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 영을 보는내내 착잡하더군요. 왕비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고르게 하고, 왕비서님만 좋다면 괜찮다는 영이었죠. 웨딩드레스는 오빠를 위해 입고 싶었지만, 왕비서를 위해 입어주는 영이었습니다.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으면서도 왕비서와는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던 영은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왕비서에게 보여주죠. 사진도 함께 찍고 말이죠.  

해줄게 이것 밖에 없다는 영, 수술을 하고 눈이 보이게 되면 왕비서가 더는 필요하지 않을테니 갈 데를 알아보라는 말에 왕비서는 영의 손을 빼며 쓸쓸함을 거두지 못하지만, 전 영이 왕비서를 내보낸다기 보다는 수술 가망성이 없을 것을 대비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수의 정체와 왕비서의 악행, 서로 침묵하고 있었던 비밀을 알아버린 두 사람이 함께 지내기 또한 쉽지 않겠죠. 어쩌면 영이 할 수 있는 왕비서에 대한 복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녹화테입에 남겨둔 눈치료를 해주지 않은 왕비서의 비밀이기도 하죠. "끝이 아냐. 복수할 거야, 나한테는 오빠가 있어".

왕비서의 손을 잡아주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선물은 영의 진심이었습니다. 영이 곁에 있어준 고마움... 그리고 동시에 갈 곳을 알아보라는 말로 왕비서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동시에 내린 영이었습니다. 영이가 그녀의 삶의 이유였는데 그것을 빼앗아 버렸으니 말이죠. 

진즉에 왕비서를 영에게서 해방시켜  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필요로 하고, 그게 자신을 더 외롭고 힘들게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영입니다. 결국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는 영, 영의 문제는 홀로 일어설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비서에게서 자립하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평생 왕비서의 도움을 구할 영일테니까요.

이는 앞이 보이는 문제와는 별개의 정신적 독립의 의미가 큽니다. 영이 왕비서를 미워하면서도 의지했기에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왕비서의 해방은 왕비서 역시도 영에게서 벗어나 그녀의 인생을 살라는 말(용서)임과 동시에, 영이 방식의 복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왕비서에게 고마움과 미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영이듯이 말이죠.

 

영이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과 이별하는 방식은 증오를 토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수에게도 같았죠. 헉헉 거리며 영을 업고 별장을 오르는 오수, 그것은 오수의 행복이기도 했을테니까요. 자기를 속인 것에 대한 분풀이처럼 춥다고 장작을 패게 하고, 배고프다고 세시간이 넘게 산을 내려갔다 오게 하면서 그래도 힘듦을 내색하지 않은 그는, 영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을테니까요.  

오수도 오영도 서로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더는 오영을 속이지 않으려는 오수를 고문하듯이 별장에서의 추억을 자꾸 되묻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면서도 말이죠.

 

별장의 추억, 아빠가 장작을 패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엄마를 위해 차를 준비한 일 따위는 없었다고 마지막 가족여행이 돼버린 그날을 말해주는 오영, 오수와 별장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던 것은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 비극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지만, 오빠 오수가 아닌 오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의 방 녹화테입에도 없는 오영의 이야기였으니까 말이죠. 

여행을 간 별장은 마지막 가족여행이며 영이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었지요. 아빠는 장작을 패고, 오빠와 영이는 장작을 모으고, 엄마는 세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고, 비탈길에서 오빠랑 눈썰매도 타고, 어린 영이와 수가 상상했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고 엄마와 다정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피곤에 지쳐 졸린 눈을 비벼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 잠드는 오빠와 영, 영이 마음으로 그렸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밤새 엄마와 아빠는 싸웠고, 영과 수는 방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그들의 가족여행이었죠. 이별여행이 돼버린... 그 날 우는 영이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오빠는 21년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별장에서의 가족이야기는 오빠가 아닌 오수에게 털어놓은 그녀의 상처였습니다. "그날은 오늘처럼, 아니 요 며칠처럼 아주 끔찍한 날이었을 뿐이야". 

영이는 오수에 대해 물어보죠. 난 이렇게 사실을 말했는데, '너도 이제 너에 대해 털어놔봐', "나무 밑에 버려진 오수는 꿈이 뭐였어? 처음부터 사기꾼이었나? 나무밑에 버려졌을 때부터 죄없는 사람들마저 적으로 삼을 만큼 걔는 태생부터 그냥 쓰레기인거야? 사기꾼 오수 어릴때 꿈이 뭐였어?".

오수도 영이 자신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압니다. 오기전부터 영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오수였지요. "목수, 농부, 어부, 엔지니어... 사기꾼 겜블러가 아닌 모든 것... 처음부터는 아니고 널 만나고부터...".

"내가 내가 널 용서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중에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건, 엄마만큼 그리웠던 오빠의 죽음을 알고도 너에 대한 분노때문에 슬퍼할 수도 없다는 거야, 사기꾼인 널 사랑한 건, 앞 못보는 내 잘못이라고 치자.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니가 밉지만, 앞 못보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잘 속았어... 그동안...". 

오빠 오수라고 왜 속였는지, 정말 78억을 빼내가려고 했었는지, 아무 변명도 이해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면서 78억 대신 목숨을 내놓기로 했고, 처음으로 무철에게 무릎을 꿇고 수술받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다는 것도, 수술만 끝나면 빈손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것도, 영이에게 추억을 찾아준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고, 행복해 하는 영이 너의 웃음이면 됐었다고, 얼마나 영이가 예쁘고 맑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그것이 전부였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오수였습니다.  

오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거친 키스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널 사랑하니까" 오수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습니다. 왜 입을 맞췄느냐고 오영이 물었었죠.

거세게 반항하던 영도 결국 오수의 입술을 받아들이죠. 영도 오수를 사랑하니까요. 오수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런 그를 사랑하는 영이니까요.

 

"이젠 우리 진짜 끝난 거지?...".

이젠 더 이상 오빠 동생일 수 없는 두 사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영이 수술을 받을 때까지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오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막으려고 했고,  자신의 정체를 떠난 후에 알기를 바랐는데 사랑도 막지 못했고, 오빠노릇도 못하게 된 오수입니다. 

 

"이제 우리 진짜 끝난 거지?...". 

21년만에 처음으로 웃게 해 준 오빠, 살고 싶게 만든 오빠, 그리고 가슴이 뛰고 설레는 사랑을 알게 한 남자와 그곳에서 이별합니다.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역시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비극이 시작된 별장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아프고 추운 겨울이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오영에게도 봄의 희망이 보일 듯해서 전 꿋꿋하게 해피엔딩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실패에도 조박사가 뭔가 희망적인 것을 찾았다는 말에 두 귀 쫑긋입니다^^

더불어 지난 글 오수의 목에 있는 상처가 해피엔딩의 복선이라는 생각 역시 여전히 가지고 있고요. 수술 후 눈을 뜬 영이 오수를 알아볼 결정적인 증거가 오수 목의 상처가 되리라는....

오영과 오수의 겨울이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군요. 늘 겨울이었던 영, 늘 마음이 시리고 추웠던 영에게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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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13:46




"애미야, 난중에 혹이라도... 나 아프거든, 며칠 더 살리겠다고 목에 구멍 뚫고 호스 넣지말어",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향하는 저를 불러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니들 마음 다 알거니까... 환자도 고생, 니들도 고생... 그러니 그러지 말어"라고 덧붙이셨죠.

하는데 까지는 다 하는게 자식된 도리라고,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 환자가족이었던 저희 시댁 형제는 아버님의 목에 호스를 넣지 말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로 최선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그게 산 사람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또 한가닥 기대를 가지며, 하루라도 더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싶은 마음에...

 

오영(송혜교)이 조선(정경순)에게 하는 말을 듣다보니 어머니의 당부말씀이 떠오르면서 착잡하고, 그러다가 눈물이 솟구치더군요. 오영의 마음이 그냥 예뻤습니다. 수술 성공확률 10%에 수술 후 항암치료를 최소 6회에서 20회까지 할 거고, 항암치료중에 재재발이 된 경우가 완치보다 많다며, 수술을 권할 수 없다는 조선에게 오영이 말하죠. "(수술성공확률 10%) 그거면 돼요. 오빠가 원해서 하는 거예요. 나도 살고 싶지만 가끔은 환자보다 주변이 더 안쓰러울 때가 있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나한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어요". 

오영의 경우와 시아버지의 경우는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오영의 말이 슬프면서도 예쁘고, 프면서도 따뜻하고... 그랬습니다. "수술에 대한 기대감, 없어요. 할게요". 수술후 완치된다는 보장도 희박한데도, 살려달라는 말대신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오영입니다. 끔찍했던 병원에서의 생활, 수술대 위에 누워 머리를 다시 열어야 하는데도 오영은 모든 것을 감수하려고 합니다. 오빠 오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살리려는 주변사람들의 마음에 회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렇게 예쁜 오영이기에 보내기가 싫군요. 기적이라도 좋으니 일어났으면 싶고요ㅠㅠ.

 

오영이 오수가 친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1년전 희미하게 보았던 남자의 목에 난 상처, 그리고 간밤에 입맞춤을 하던 오빠에게서 보였던 상처, 진소라의 휴대폰 음성메시지까지... 오영이 오수의 정체를 이제서야 안 것인지, 이미 알면서도 오빠가 너무 좋아서 모른척하려고 애써왔는지, 전 아직 모르겠더군요. 영민하고 눈치빠른 오영이라면 짐작하고도 남았을텐데 싶어서 말이죠. 오수를 오빠로 믿고 있었는지, 믿고 싶었는지 여전히 제겐 궁금점입니다. 

오수가 키스를 한 후 오영은 자신의 이상한 감정에 두려워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심장이 두근거리고 화끈거리고 왠지 모르게 자기의 이상한 감정이 무섭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영화에서나 혹은 책에서만 본 주인공들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에게도 나타납니다. 사람에게 처음 느꼈던 감정이기에 오영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희선아, 동생이 오빠를 좋아해도 되니?  오빠랑 있으면 이상하게 자꾸 가슴이 뛰고 설레...". 

오영의 생각에는 오빠를 찾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 오빠, 엄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오빠가 떠날 때까지, 오영이 죽을 때까지 함께 있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오빠를 남자로 좋아한다는 것은 오영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오빠가 원하니까 수술을 받고, 남겨질 오빠를 위해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가자는 것, 오빠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그게 오영이 해줄 수 있는 것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빠의 손이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온몸이 긴장되면서 가슴을 콩콩거리고, 간접적으로만 알았던 것들을 경험하죠. 오영에게는, 네, 아마 두렵고 무섭고 겁났을 거예요. 더군다나 그래서는 안되는 것쯤은 알고 있는 오빠한테서 느끼는 감정이었으니 말이죠. "이건 아닌 것 같아". 

 

거리를 두려는 오영이 오수는 이상합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결국 오영이 말하고 말았죠. "어젯밤에 오빠 니가 나한테 입맞춘 거 알아. 왜 그랬어?", "널 사랑하니까", 난 동생이라는 말에도 오수는 상관없다고만 할 뿐입니다.

오영의 비밀의 방에서 진짜 오빠 사진을 커튼에 매달아두고, 몇번이고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리느라 녹화를 정지하면서 자기가 오빠가 아니라고 녹화를 했던 오수였습니다. 그러나 오영에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지요. 영이가 받을 상처와 배신감, 아니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놓아버릴까 두려운 오수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왕비서, 오수는 왕비서를 참아줄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뇌종양때문에 눈이 먼 건 절대 아닙니다. 조기발견해서 제때 치료했다면, 집에서 갇혀지내는 신세는 안됐을 겁니다", 뇌종양으로 눈이 멀 정도면 환자의 눈이 그렇게 깨끗하고 예쁘지는 않다는 구박사의 말에 오수는 피가 거꾸로 솟지요.

오영의 눈이 먼 것은 왕비서, 그 여자의 오영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병적인 사랑때문이었음에 오수는 분노하죠. "확...x",  살기가 실린 손을 겨우 멈춘 오수였습니다. 조인성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깜놀했답니다.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네요.

화를 참느라 부르르 떠는 오수, 오영의 눈만 생각하면 왕비서를 그 자리에서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오수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왕비서와 맞서는 오수였지요. "조용히 해! 내가 지금 당신을 젖먹던 힘을 다해서 참아주고 있으니까. 영이 눈이 저렇게 된 건 RP(망막색소변성증)때문이야, 뇌종양이 아니라... 만약 영이의 수술이 잘못되면, 영이가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영이를 위하는 척하는 그 가증스런 눈빛 내 앞에서 다시는 하지마".  

오수의 분노는 왕비서와 짜고(?) 오진을 했던 안과의사에게서 터져버렸죠. 오영의 수술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했던 조박사팀, 구박사가 뇌종양도 눈도 수술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오수에게 전화로 알려줬지요. 한가닥 희망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듯한 오수입니다.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영, 그 아이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보게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오수였습니다.

자기 얼굴도 모르는 영에게 자신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지 꼭 보게 하고 싶었던 오수, 절망이 눈물이 되어 흐를 뿐입니다. 오영의 눈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은 오수, 그 마음이 어떠한 건지, 오수의 분노의 눈빛으로 다 읽혀졌죠.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절망까지 말이죠. 

대로 한복판, 넓은 길에 오수를 위해서인듯 달랑 두대밖에 없는 자동차, 여튼, 차에서 곽호석을 끌어내려 사정없이 미친듯이 묵사발을 내버린 오수였습니다. 무슨 일로 맞는지 영문을 모르는 의사,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고 생갹하쇼! 그 어린 아이에게 빛을 보지 못하게 하다니, 햇살이 무슨 색깔이냐고 묻게 하다니,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볼 수도 없게 하다니, 한 아이의 인생을 암흑속으로 던져놓다니, 당신은 의사자격도 없고 맞아도 싸!  

 

임맞춤 후 오영은 함께 잠을 자지 않겠다며, 방문을 걸어잠그는 등 오수를 피하는 듯 보입니다. "오빠 니가 자꾸 남자로 느껴져. 오빠 니가 입맞춘게 자꾸 생각나", 오빠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때문에 더 무섭다며 오영은 오수를 밀어내지요.

그냥 곁에만 있겠다고, 침대 밑에서 자겠다는 오수, 오영과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무철에게 죽어야 하는 날짜같은 것은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오영이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 오수에게는 힘들 뿐이죠. 그리고 더이상 오빠 행세를 할 수 없는 오수가 그 집에서 나갈 날이 머지않았음이... 

오수와 오영의 대화를 들어버린 왕비서(배종옥), 오영의 비밀의 방 비밀을 알게 된 왕비서는 이판사판 오수와 진실 주고받기 싸움을 하는데, 이번회는 싸이코같아서 그게 본모습인가 소스라치게 놀랐네요. 오영의 녹화테입을 밤을 세워 본 왕비서, 그날 아침식탁에서 오영에게 무뚝뚝하게 한 마디를 하더군요. 너랑 나랑 똑같다는 식으로 말이죠. "영이야, 난 내가 널 잘 키운 거 같은데 어때? 나만큼 강하고 독하고 모질고 때론 잔인하게...그치?".

 

사랑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오영에게 왕비서는 비서, 눈대신 필요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필요하기에 입을 꾹 닫고 20년이 넘게 왕비서를 참아온 오영, 왕비서에게는 독하고 잔인한 오영이었겠죠. 그녀의 오기와도 같은 영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왕비서라는 인물은 노희경 작가가 꼭 풀어줘야 할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오영에게 입을 맞췄다는 말에 오수의 뺨을 때리는 왕비서, "니까짓게 어디서 감히 걔한테 입을 맞춰!!", 영의 말도 들었던 왕비서였으니 오영도 오수를 남자로 느끼고 좋아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은 알았을텐데, 왜 영의 감정은 무시를 하는 것인지, 사기꾼에게는 마음을 주고 헌신해 온 자신에게는 마음 한자락도 내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건지, 왕비서와 오수 두 사람의 싸움은 오영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육탄전을 보는듯 격렬하더군요.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영이가 수술을 받을 수 없대. 눈도 고칠 수없대. 당신이 영이를 사랑한다는 말 난 믿지 않아. 당신은 그냥 쓰레기같은 당신 존재의 이유를 영이한테서 찾으려고 하는 것 뿐이야!". 

"그러는 넌? 너 역시 니 쓰레기 같은 인생을 걔한테 보상받으려는 것 아냐? 영이 눈? 그래 내가 그렇게 했다!(띠융~ 왜 그렇게 했는지, 전 노희경 작가가 이 부분을 어떻게 말할지가 가장 궁금하군요).

영이도 그걸 알고 있지. 근데 왜 모르는 척 했을까? 걔는 내가 필요하니까! 네가 영이한테 준 상처에 비하면 난 아무 것도 아니지, 영이가 네가 오빠가 아니라는 걸 알 때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니?

온실 속 비밀의 방에 들어가 영이의 추억을 훔쳐서 영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하던 오빠행세를 하던 널 용서할 수 있을까? 78억 빚때문에 영이를 사랑하는 동생인 척하는 널 영이가 용서할 것 같아!!(또다시 띠융~눈을 방치한게 거짓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구! 헐! 전 왕비서에 대한 심적 데미지가 큽니다, 오수의 말대로 미친 건지)" 

 

진소라(서효림)의 전화를 받고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영, 왕비서의 방으로 내려왔다 이 모든 광경을 듣게 됐죠. 희미하게 다시 보이는 오수의 목상처, 그리고 1년전 "당신 오빠가 당신을 사랑한대"라며 오빠의 편지를 읽어주었던 그 남자였습니다. 오빠라고 온 오수가...

진짜 오빠는 죽었고, 오빠였던 사람은 가짜 사기꾼이고, 믿기 힘든, 아니 너무나 슬프게만 들리는 두 오수에 대한 두 가지의 진실 앞에 눈물만 흘리고 서있는 오영, 그녀의 휑한 표정, 핏기 가셔버린 얼굴, 그토록 맑고 예쁘던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이 가슴을 후립니다. 차가운 겨울 오영에게 다가왔던 오빠라는 따스한 바람이 한순간에 너무 차갑고 시리고 아픈 바람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가여운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전 역시나 이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있나 봅니다. 눈이 부시게 투명하고 맑은 오영에게 행복한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의사는 뇌종양도, 눈도 가망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사망선고와도 다름없는 이 말이 어떤 기적같은 일로 뒤집히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 희망적인 복선을 찾아보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번 12회 마지막 엔딩에서 제 마음에 환한 빛이 들어오더군요. 오영의 눈에 비치는 빛의 색깔이기는 했지만, 전 해피엔딩 복선을 영상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오영의 눈의 상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의 상태는 아니지요. 오수의 목상처를 어두운 관을 통해 어렴풋 보이는 듯한 장면도 몇번에 걸쳐서 나왔고요. 그리고 오수와 왕비서의 이야기에 큰 쇼크상태에 빠지는 오영이 현기증을 잠깐 느끼는 듯 눈을 감았다 뜨는데, 어머나! 마치 해를 바라볼 때의 느낌처럼 흰색과 노란색이 전체 화면에 가득하더군요. 빛과 희망을 상징하는 흰색과 노란색!

그 전에는 오영의 눈상태를 까만 색감을 위주로 보여주었지요(오영의 눈상태와 상처받고 마음을 닫아버린 감정을 말하듯이). 오빠는 죽었고 오수는 가짜고, 깊은 절망과 배신감, 슬픔에 싸여 온통 세상이 멍해져 버린 오영, 그런데 그 절망 속에도 이 아이에게 조금은 따사로운 빛을 주고 싶어하듯, 조금의 행복을 주고 싶어하듯이 오영이 감지하는 빛을 환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흑백의 교차로 보여주는 감각적인 연출, 두 색감의 대비는 그녀의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그녀의 눈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오영 눈에 비치는 빛의 변화가 엔딩을 암시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봤습니다. 오영의 눈은 그녀의 닫힌 마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오수로 인해 마음을 열었던 것처럼 환한 색으로 변하더군요.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색감의 변화가 의미심장하게 보이네요. 오영의 행복을 말하는, 혹은 시력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빛은 아닐까...요?

 

오수는 78억의 빚때문에 오영에게 왔지만, 오영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오영도 마찬가지지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빠, 21년간을 찾아오지 않았던 야속한 오빠, 처음 만나고도 왜 눈이 멀었느냐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던 오빠를, 언제부터인가 의지하고, 믿고, 오빠와 함께 있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오빠를 남자로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은 오영의 생각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다른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입맞추고 싶고, 두근거리고 설레이고...사랑은 두 사람의 계획과 생각에는 없었던 감정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불어왔을 뿐입니다. "널 사랑하니까!", 오영이 오수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은 진심임을, 그게 그 남자의 전부임을 알았으면 좋겠군요.  

앞이 보이지 않기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았던 영, 그녀에게 돈이 없으면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영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수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이의 돈이 목적이었죠.

그런데 오수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오빠니까 라고만 생각했던 영, 영이가 매일매일 오수에게서 받은 것은 풍경소리였습니다. 너의 곁에 내가 있다는 소리였지요. 마음을 준다는 것, 오수에게는 열아홉 이후 처음이었죠.  바람이 불어야 제소리를 낼 수 있는 풍경, 그 바람은 오수의 진심이었음을, 그 소리는 깨끗한 사랑이었음을 오영이 알게 되기를.... 21년을 어둠과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오영, 오영의 눈에 보이는 빛이 까만 색에서 환한 빛의 색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오영의 눈과 마음이 환한 빛으로 가득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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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12:32




오영(송혜교)은 오수(조인성)에게 말합니다. "너 그거 알아? 너한테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 거... 비누향도 아니고, 화장품향도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냄새가 나...". 오영이 맡은 오수의 향기는 오영이 그립다는 사람의 냄새겠지요.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나던 그 향기, 포근한 향기, 따뜻한 향기, 그리고 자꾸만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아늑한 향기... 잠든 오영의 손을 잡아주는 오수의 손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믿고 싶은 사람의 향기... 뭔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떨리는 향기.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가 가지고 있는 오감(五感-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육감이라는 제 6의 감각이 있습니다. 오영에게는 시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없는 대신 다른 감각들이 더 발달해 있죠. 특히 후각과 청각은 시각장애인에게 정안인보다 발달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오영은 육감이 발달한 아이입니다. 몹쓸병은 그녀의 시력을 앗아갔지만, 육감이라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감각이 그녀의 눈을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자꾸만 오수를 곁에 붙들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이 단순히 그가 오빠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돈을 노리고 왔다고 해도, 그녀만이 감지하는 오수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색다른 감정입니다. 오수가 죽었다 깨나도 친오빠가 될 수 없듯이, 뭔가를 감추는 듯한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거짓과 진심이 뒤섞여 있는 그의 목소리는 자꾸만 그를 보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그의 마음을 읽고 싶고, 그의 진심을 보고 싶고, 그리고 믿고 싶어집니다. 

암흑 속 추운 새장에 찾아든 따스한 바람이 오빠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장변아저씨나 이명호 본부장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오수가 잡아주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그렇게 오수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오영에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남녀 사이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하는 오영은 그것이 오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겁니다. 

 

잦아지는 두통과 현기증, 오영은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오빠가 떠나기 전이었으면 싶은 오영입니다. 돈을 노리고 왔든, 그가 친오빠가 아니든, 사기꾼에 도박꾼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영에게 남은 것은 돈이 아니라, 그녀가 사는 동안만큼만 누리고 싶은 행복이기에 말이죠. 진심으로 오영을 웃게 해주고, 그 옛날 철모르던 시절, 행복이 행복인줄도 모르고 웃던 여섯살의 그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며 떠날 수 있다면...

21년만에 행복을 찾아준 오빠를 위해 오영은 뭔가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오빠가 바라는 것, 돈이라면 그녀가 떠난 후에는 아무 쓸모도 없을 돈을 줄 것이고, 오빠가 바란다면 사랑없는 이명호 본부장과의 결혼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오수가 그녀의 곁에 있어준다면, 오빠 그가 몰고온 바람이 잠시 곁에 머물러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오영은 오빠라고 찾아온 오수의 향기가 진짜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영이 믿고 싶은 것은 그가 오빠라는 것이 아니에요. 오영을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을 말함이었죠.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영의 마음을 속여온 주변사람들과는 다른, 오영의 돈이 아니라 오영의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사람말이죠.

오영의 외로움은 오빠와 엄마가 떠난 그날부터, 그리고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깊어만 갔습니다. 왕비서는 그런 오영을 치료해 주지도 않고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무엇때문인지 오영은 알지 못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영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음에도 왕비서는 그런 욕심을 내비치지도 않습니다.

영이만 무사하면, 영이만 안전하면, 영이만 자기 눈 앞에서 살아있으면, 그녀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는 영이로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왕비서는 영이의 어둠을 때로는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이가 외로울 수록, 영이가 기댈 사람이 없을 수록 왕비서의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뭔가 할일이 있는 것처럼 생기마저 느껴집니다.

'그녀는 왜 내 어둠을 좋아하는 걸까?', 어려서부터 영이가 품어온 의심이었습니다. 엄마이고 싶어하는 그 여자가 보호자, 법정대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영이의 상처를, 영이의 외로움을 그녀만이 독차지 하려는 일그러진 사랑때문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왕비서의 보호가 더해질 수록, 왕비서의 영이를 보는 애처로움이 깊어갈수록 영이의 외로움은 왕비서의 새장속에서 더 커져만 가고 있었음을 왕비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 새는 커갈수록 마음을 꽁꽁 닫아걸기만 했습니다. 영이가 커가는만큼 그 닫혀버린 마음의 문도 크고 높아만 갔죠. 영이는 왕비서에게 날개다친 새였습니다. 혼신을 다해 치료해주고 다시 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왕비서의 새장 속에서만 날아야 하는 영이었습니다. 두발달린 짐승은, 날개가진 새는 아무데고 갈 수 있다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영이었습니다.

그런 영에게 찾아온 사람이 오빠라고 21년만에 나타난 오수였습니다. 새장속 영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주고, 영이의 추억을 찾아준 사람입니다. 비디오 테입속에만 살고 있는 영이의 추억...

세상에서 단 한나뿐인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 내가 오빠 널 믿어도 된다고...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오열하는 오영에게 힘겹게 오수는 말합니다. "난 믿어도 돼, 난 믿어도 돼 영이야..".

힘겹게 뱉는 "난 믿어도 된다"는 오수의 복잡한 심경, 갈등과 다짐이 교차하는 오수의 온몸에 들어간 힘은 오영을 대하는 그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잔인하게 엮어버린 인연, 그의 목숨이 걸린 사기행각에 오영의 눈물은 오수를 힘겹게 합니다. 죽이지도 죽을 수도 없는 오수,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끌리는 감정, 그것은 늪과도 같았습니다.  

동생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오영의 공허한 눈빛이 끌어당기는 것, 그것은 오영의 향기였습니다. 

오영은 오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정말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은 그녀의 초점없는 눈빛이었습니다. 언뜻언뜻 별처럼 빛나는 그 눈빛은 오수의 지난 날들을 씻어주는 정화수처럼 맑기만 합니다.

'대체 난 왜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도 없으면서 앞 못보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끝없는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 걸까?... 인생 별거 아니라고, 그냥 살아지면 사는게 인생이라고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살아서 지금같은 순간을 나도 모르게 한 번쯤은 미치게 기다리고 있었나?".

이명호와 첫키스를 했다고, 기대보다 별로였다고 모래처럼 메마른 말을 무덤하게 말하며 잠이드는 오영,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어진 오수, 처음입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진 것이... 떠난 희주에게도 그는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준다는 것은 지켜준다는 것이겠죠. 갓난아이때 버려진 오수는 누군가를 믿는 것도,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오영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키스는 이런 거라고 해주고 싶어진 오수입니다. 오영이 동생이 아닌 여자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명호 본부장에게 다른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 오수는 술집에서 오영에게 한 이명호의 키스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미친놈", 오영의 입술 가까이에 가버린 오수,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두려운 오수입니다. 아니 이미 사랑을 시작해 버린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가 힘이 듭니다. 오영의 방 그림 뒤 금고를 털어서 그냥 여기서 끝내고 싶은 오수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여자의 맑은 호수가 더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 맑은 호수에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자기와 같은 외로움을 가진 그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왕비서에게 들켜버린 오수, 그는 어떤 변명을, 아니 왕비서와 어떤 거래를 하게 될지... 왕비서(배종옥)에게 오영의 눈을 방치한 약점을 말할 듯 싶은데, 오수 이 남자 오영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더 힘겹겠군요.

 

*******

키스를 하려다 퍼뜩 정신줄을 챙긴 오수를 생각하며 오늘 감상곡 가사 올려봅니다. 오수를 생각하며 전 요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답니다. (엠씨더맥스의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노래를 링크로 걸려고 했는데 울딸이 집에 없는 관계상 어떻게 거는지 몰라 그냥 가사만 ㅎㅎ 아마 아시는 분 많을 거에요. 한 멤버가 실망스러워서 에잇! 싶지만 노래는 명곡)

 

아닐 거라고 사랑 아닐 거라고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도망쳐 보고 나를 타일러 봐도

가슴은 이미 시작했나봐


사랑한 널 두고 미련한 널 두고

다른 사랑에 빠진 날 어쩌니

널 돌아선채로 걸음이 더 빨라져

그사람을 봐야 살 것 같아서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눈물이 나는 널 나만 바라본 널

지켜주겠다던 나였었는데

스쳐갈 바람은 잠시 흔들리다가

다시 돌아가길 기도했는데

 

사랑할 이유들이 내겐 너무 많아서

사랑할 방법이 내겐 너무 없어서

울고 웃다가 자꾸 뒤돌아 서는

내가 너무 싫어져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 말 못해

감히 행복해서 행복하라 말 못해

너보다 더한 아픔 겪게 될테니

잠시만 날 보내줘

잠시만 행복할게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계속적으로 한 사람의 눈동자에 머무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송혜교의 초점을 잃은 눈동자입니다. 시각장애인 연기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더군다나 그렇게 코앞으로 들이밀고 들어오는 카메라 앞에서는 연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을텐데 동요하지 않고 감정선을 유지하는 연기가 참 좋더군요. 상대배우와 눈빛을 교감하지 않는 연기는 독백 모노드라마보다 힘이 들 듯한데도, 차분함과 드라마 전체적인 흐름을 잘 이어주는 송혜교의 재발견이라고 할만큼 연기에 향기가 있더군요.

이번 6회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장면은 적절하게 삽입된 영화 '봄날은 간다'였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소리의 영화라고 까지 했던, 영상과 소리에 공을 들였던 영화의 선택이 탁월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이 봄날은 간다를 여러번 봤다는 말이 마음에 닿더군요.

소리로 장면들을 상상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대나무 소리, 눈녹는 소리, 바람부는 소리 등등을 담은 영화속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는 오영이 이명호와 본 액션영화보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쉬웠을 듯도 하고, 참 많은 감정들이 스치더군요. 남녀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궁금해 하는 오영의 궁금증도 솔직하게 표현해서 좋았고요.

 

그걸 보면서 전날밤 오영이 키스하려고 했던 오수의 행동을 알고도 모른척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안인보다 감각이 섬세한, 더군다나 불면증까지 있는 오영이 자기 얼굴에 가까이 다가오는 오수의 숨결을 느끼지 못했을까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도 오영은 눈을 뜨지 않았죠. 그 느낌이 오빠가 아닌 남자의 향기였다는 것도 오영은 느꼈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오영이 눈을 뜨지 않았던 이유는 정말 잠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눈을 뜨면 오수가 자기 곁에서 떠나버릴 것 같아서는 아니었을까???....

오빠라고 믿고, 그냥 짧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오영의 바람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단 한사람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는 사람, 믿고 싶어진 사람 오수가 조금더 곁에 머물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작은 바람이 깨질까 두려워 눈을 뜨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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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3:09




사람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가끔은 그 중요성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돈을 쫓아보기도 하고, 명예와 성공을 쫓는 것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기에 원동력을 가지는 것이겠지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왕비서와 조무철을 보면 전혀 다르지만 왠지 비슷한 색깔의 삶의 이유가 보입니다. 두 사람은 삶의 이유를 매일 문신처럼 각인시키고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눈 먼 영이를 위해, 죽은 희주를 위해...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왕비서는 영이가 없으면 마른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버릴 자신을 위해 영이를 지키고 있고, 조무철은 죽은 희주에 대한 미련으로 남아버린 첫사랑, 그 미련한 그리움을 지키고 있는 인물같아 보여서 말이죠. 그래서 이 두 캐릭터를 미워하기가 힘들군요. 밉기보다는 아픕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왕비서(배종옥)과 청부폭력배 조무철(김태우)입니다. 왠지 이 두 캐릭터에게서는 진한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어린 영을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시력을 상실하도록 방치한 왕비서의 복잡한 심리만큼이나 오수(조인성)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조무철에게서는 본성까지 미워할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죠.

죽은 희주에 대한 순정, 노희경 작가는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나이든 중년들의 순정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김민철(김갑수)의 윤영(배종옥)에 대한 소년같은 순정, 나이들어 우정처럼 편해진 감정이 되면서도 순정이라는 설렘을 맛깔스럽게 두 중년배우를 통해 잘 녹여냈었죠.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주먹을 무기삼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조무철의 쓸쓸하도록 냉소적인 눈빛, 그 너머에 일렁이는 서글픈 빛깔의 그리움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김태우의 눈빛연기가 참 좋더군요. 조무철이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궁금하게 만든 것은 김태우의 섬뜩하리 차가운 눈빛이 늘 먼지점 어느 한 곳에 머무는 듯한 쓸쓸함때문일 겁니다. 그곳이 죽은 희주였음이 5회에 드러나기도 했죠.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두 사람의 상처를 서로 치유해야 할 운명이라면 운명과도 같은 무철과 오수의 과거의 인연의 공통분모가 희주였습니다.

어쩌면 오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상처를 서로 치유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그 막을 수 없는 감정을 누구보다 조무철이 잘 알고 있을 듯 해서 말이죠. 오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오수를 용서할 듯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랑을 아는 인물이 조무철이기 때문일 듯 해서 말이죠. 아마 그 때문인 듯 합니다. 조무철에게 보이는 죽은 희주에 대한 아프도록 슬픈 순정. 

희주를 죽게 한 짙은 혐오감은 오수를 사지에 밀어넣기도 하지만, 그게 오수에 대한 증오때문만은 아닌듯 합니다. 결국 희주를 오수에게 보낸 것은 자신이었고, 희수를 지키지 못했던 그 역시 희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합니다.

오수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해도 살아돌아올 희주가 아님을 알기에 오수에 대한 증오는 더 진해져만 갑니다. 오수의 아이를 가졌다고, 진짜 오수가 자기 것이 됐다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희주, 그의 마음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행복한 미소를 짓던 희주, 무철에게 희주의 임신은 더이상 희주를 바라볼 수 없는 절망같은 좌절감이었지만, 희주에게는 찬란하게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습니다.

그 미소를 지켜주는 것이, 희주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희주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무철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아이를 거부하고 돌아서는 오수의 뒤를 쫓다 차에 치어 숨진 희주의 마지막 모습은 무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에게 희주는 삶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던 때였으니 말이죠.

 

희주의 기일을 잊어버린 오수, 솜사탕을 만져보고 혀끝을 가져다 대보고 행복해 하는 오영을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지요. 정체가 탄로나기 전에 오영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었지만, 오영에게 자꾸 뭔가를 해주고 싶어지는 오수입니다. 그녀가 웃게 되니까요. 

오영의 오빠와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다른 사람들의 추억과는 다른 기억이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행복했던, 너무나 짧아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안되는 기억들이었기 때문이었죠. 그 후 오영은 암흑과 같은 시간 속에 던져져야 했고, 사람들로부터 상처입고 걷어내고 싶은 기억들만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엄마와 물놀이를 갔던 강가에 데려달라는 오영, 죽은 오수의 유골을 뿌린 곳이라는 것을 오수는 알아챘지요. 그들 남매에게 특별한 추억이 깃든 강가는 어쩌면 그들 가족이 마지막으로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였을 겁니다. 

오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희주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했고, 오영의 친오빠 오수의 죽음을 봤기에 말이죠. 강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오영을 끌어내 자기도 모르게 뺨을 때렸던 것은, 눈 앞에서 또다시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희주처럼, 죽은 오수처럼...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곳, 그 순간이었길 바랬다는 오영의 말이 오수를 아프게 합니다. 행복했다는 오영의 말이 오수의 가슴을 아프게, 아니 불안스럽게 쑤셔댑니다. "오빠 니가 와서 좋다"며 품속을 파고드는 오영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돈때문에 오영의 친오빠 행세를 하는 그의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리고 오영 그여자에게서 동생이 아닌 여자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아무렇지 않게 오빠의 품이라고 파고드는 그녀의 손길이 불편한 오수입니다. 그냥 돈많은 눈먼 여자, 죽은 오수의 여동생이 아닌, 특별한 여자가 될 것만 같습니다.

"이제 내가 널 왜 찾아왔는지, 내가 찾아온 이유가 돈이 아니라 오직 너때문이라는 걸 믿는 거야?", 대답없는 영, 차라리 대답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오수도 혼란스럽습니다. 돈때문에 오영의 오빠 행세를 하는 것이 후회가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여자인줄 알았더라면, 무철의 손에 78억짜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택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래도 오영 이 여자가 웃는 것이 좋습니다. 이 여자가 행복하다고 하니 오수도 잠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두달동안만... 오영이 옆에 있으라면 있어주겠다는 약속을 해 준 오수, 그도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냥 오영 그여자 곁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오수는 오영을 통해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다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도, 일출이 이렇게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것도, 한 여자의 미소가 그를 웃게 한다는 것도...

보이지 않는 오영보다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하죠? 오영 그 여자를 통해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오수 자신인 것만 같으니 말입니다. 희주와 함께 했던 짧았던 행복 이후 처음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잠시만 행복하고 싶은 오수입니다. 오영 그여자가 행복해 하는 시간만은, 돈도 무철도 오수가 누구인지도 잠시 잊어보고 싶습니다.

 

오수의 행복, 오영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필이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 그 날이 희주의 기일이었는데, 잊어버린 오수입니다. 어떻게 희주의 기일을 잊을 수가 있었는지 죽이고 싶도록 자신이 미운 오수지요. 희주의 유골을 묻은 희주나무, 행복같은 건 그의 인생에 없는 단어였음을 희주나무에 와서 또 깨닫는 오수입니다.

무철이 건넨 죽음의 약, 오영 그 솜사탕처럼 여린 여자를, 새하얀 눈처럼 예쁜 여자를 죽이든지, 오수가 먹고 죽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합니다. 아이를 가진 희주에게 화를 내고 돌아서버린 그를, 그래서 희주를 죽게 한 오수를 무철은 이렇게 말하죠. "넌 영이에게 준다에 한 표 던진다. 넌 구더기가 나는 썩은 쓰레기니까...".

그때는 너무 어렸다고, 아이를 가진 희주를 밀어냈을 만큼 두려웠다고 변명을 해도 무철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모든 것을 버리고 오수 하나만 택한 희주를 죽게 했고, 자신의 아이도 버린 모진 놈이었다는 말에 주저앉는 오수입니다. 오수를 버린 부모보다 모진 놈이라는 말이 오수에게 비수가 되어 꽃힙니다. 증오하고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의 어머니의 판박이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죠.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외면할 정도로 오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오수를 택했던 희주, 부모까지 등지고 오수를 찾아왔던 희주의 사랑을 알고 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무철이었습니다. 정작 눈이 멀었던 것은 오수였던 거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오영은 사물을 볼 수 없지만 마음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오수는 마음을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도, 자신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서 말이죠. 버려졌다는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오영보다 오수 자신이 더 심했다는 것을 깨닫는 오수입니다.

죽은 오수 행세를 하며 78억을 뜯어낼 목적으로 들어온 오영의 집은 오수와 오영의 목숨이 걸린 도박판이 돼버렸습니다. 그런 오수에게 오영이 약을 달라고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이죠. "죽고 싶을 때 먹으면 괴로움도, 고통도, 절망도 한 순간에 사라지면서 마음이 아주 편해진대".

약을 먹고 오영이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날까? 품속을 파고드는 오영의 손길에서 여자를 느꼈던, 심장이 쿵쾅거리던 그 여자는 더이상 기억할 행복이 없어서, 더이상 만들 행복이 없어서 죽고 싶어 합니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죽고 싶은 사람은 오수인데, 눈꽃처럼 시리게 예쁜 이 여자가 죽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치게 슬픈 오수입니다.

촉촉히 젖어드는 오수의 눈을 그녀가 볼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세상에 대한 역겨움만 담고 있는 자신의 눈물을 그 여자가 볼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떨리고 있는 그의 마음을 그녀가 아직은 읽을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오빠가 아닌 남자이고 싶은 그의 마음을 그녀가 오래도록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오빠를 만나 행복해 하는 시간을 조금더 오래 만들어 주고 싶은 오수입니다.

그러나... 그 바람마저도 오래가지 못하나 봅니다. 오수의 정체가 들통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고, 오영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느껴는 마음을 감추지 못할 듯 하니 말입니다.

 

바람...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시리게 아픈, 그런데도 자꾸 그 바람이 궁금하고 맞고 싶습니다...

왕비서와 무철의 주위를 맴도는 쓸쓸한 바람마저도 그 온도가 궁금해지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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