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윤'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2.08.18 강호동 방송복귀, 유재석에게도 가장 반가운 소식 (23)
  2. 2010.12.09 '무릎팍도사' 추신수 선수, 아내와의 사랑도 메이저리거 (27)
  3. 2010.07.22 '무릎팍도사' 쓸데없는 고민거리 들고 나온 김남길 (39)
  4. 2010.07.15 '무릎팍도사' 죽음이 고민이라는 김갑수의 죽여주는 예능감 (22)
  5. 2010.06.17 '무릎팍도사' 삶이 한편의 영화인 배우 윤정희 (19)
2012.08.18 08:04




강호동과 유재석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예능을 움직이는 쌍두마차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강호동과 유재석은 누가 최고다라고 우열을 가릴 의미가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입니다. 순위 매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시청률을 잣대로 두 사람의 능력을 재려고도 하지만, 경쟁이라는 것을 떠나 강호동과 유재석이 형제 버금가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죠. 
강호동이 세금과소납부에 대한 논란물의에 책임을 지고 방송계를 은퇴할 고민을 했을 때도, 강호동이 가장 먼저 상의한 사람이 유재석이었을 정도였습니다. 방송하차 결정에 마지막까지 설득했던 사람이 유재석이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고요. 영구은퇴가 아닌 잠정은퇴로 가닥을 잡은 것도 유재석의 만류가 컸습니다. 강호동의 예능 스승인 이경규 역시도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고 말이죠.
세금과소납부로 물의를 빚었던 강호동이 1년이라는 긴 침묵을 끝내고 방송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가장 반가워했을 사람이 유재석이나, 이경규 등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작년 방송연예 시상식에서 유재석을 비롯,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 등이 강호동의 복귀를 바라는 수상소감들이 줄을 이었다는 것만 봐도, 강호동의 연예계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을 입증하고도 남았지요. 최근에는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유세윤이 강호동에게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죠.
방송이라는 것도 사람들 사는 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격려하고, 응원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니 말입니다. 기업의 독과점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강호동이 떠난 연예계의 빈자리는 컸지요. 강호동은 강호동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연예프로그램의 자체 브랜드입니다. 이는 유재석도 마찬가지지요. 개인적으로 유재석과 강호동을 보면 참 특이한 관계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마치 한 마차에 달린 두 개의 바퀴 같거든요.
강호동이 방송에서 모습을 감춘 후 많은 사람들은 유재석의 독주를 예상했습니다. 강호동의 빈자리를 메꿀 제 2의 강호동으로 거론된 MC들도 많았습니다. 예상은 빗나갔고, 냉정하게 말해 누구도 강호동을 대신할 국민MC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홀로 예능을 이끌어 가는 유재석이 외로워 보였던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재석의 간판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MBC의 파업에 동참하면서, 6개월 방송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죠. 전혀 별개의 이유였지만, 마차 바퀴 하나가 빠지자 나머지 바퀴도 혼자 끌기에는 힘에 부친 모습이었습니다. 행간을 읽지 못하는 분들, 버럭! 하시지 마시고요.
유재석이 외로워 보였다는 것은 예능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다운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운된 예능분위기의 간극을 메꾼 것은, 수많은 이름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예능프로는 늘었는데, 뭔지 모를 허전함은 웃음이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유재석이 몸이 두개도 아니고, 모든 프로그램을 커버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강호동의 호쾌한 진행과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도 많았고요. 강호동의 잠정하차로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은 무릎팍 도사 하나지만, 1박2일은 시즌2로 반토막난 시청률이 말해주다시피, 국민예능의 아성을 지켜내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지만, 강호동을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씨름판을 떠나 방송생활을 시작하고, 쉼없이 달려왔던 강호동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강호동이 세금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잠정은퇴한다는 소식보다, 강호동을 둘러싼 근거없는 의혹들이 불거져 나왔을 때 더 안타까웠습니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이렇다 저렇다 억울하다는 변명 한마디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강호동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비난의 화살들이었습니다. 근거없이 터져나온 종편설은 강호동을 돈만 쫓는 방송인으로 만들었고, 누구도 그런 카더라 소식을 뿌린 책임을 지거나,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강호동 죽이기에 혈안이 된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었죠. 
SM의 계열사 SM C&C와 전속계약을 맺고 방송활동을 시작한다는 강호동의 공식입장 발표는 간결했습니다. 강호동의 공식 소속사가 된 SM 측에 따르면, 강호동은 이번 전속계약 체결에 대해 "지난해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올바른 일은 MC로서 방송으로 국민 여러분께 더 큰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라고 결정해, 조심스럽게 방송 복귀를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강호동이 SM계열사인 C&C를 선택한 이유는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통해 내 본연의 일인 MC에 집중하여 ,더 많은 재미와 감동을 국민여러분께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방송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신동엽과도 한 솥밥을 먹게 된 것으로 알려져, SM의 방송제작에 대한 청사진이 더욱 구체화될 것이 점쳐지기도 합니다.
강호동의 방송복귀를 신호탄으로 방송사들의 강호동 잡기가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구체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복귀를 하게 되는 것인지, 기존에 강호동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재투입되는 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강호동을 방송에서 보게 될 날이 머지 않은 듯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폐지된 무릎팍 도사를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강호동없는 무릎팍 도사는 의미가 없었기에 폐지수순을 밟았지만, 스타나 유명인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도사님 방이 그립습니다. 때로는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게스트들을 땀을 삐질삐질 흘리게도 만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정작 강호동이었지요.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MC로서 때로는 가혹한 질문을 해야 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한복 저고리를 걷어가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게스트에게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강호동이 생각납니다.
강호동에 대한 호불호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요. 문제는 강호동이 싫다는 이유로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입니다. 강호동의 진행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몇 연예인을 예를 들기도 하더군요. 강호동때문에 기가 죽었느니, 강호동이 주위 사람들을 키워주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을 하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강호동과 함께 했던 연예인들 중에 강호동때문에 크지 못한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잘 하면 제 탓 , 못하면 조상탓이라더니 제 능력은 생각못하고 엄한 사람 탓만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졌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시원시원하고 호탕해서 좋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혹자는 강호동의 큰 목청을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볼륨을 낮추든지 다른 프로를 본다든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왜 목청 큰 강호동 탓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쌍하기 까지 한 불만은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지적입니다. 전 전라도 여자인데, 강호동의 카랑카랑한 경상도 사투리가 좋기만 하더구만요.

방송을 접고 등산을 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지냈던 강호동은, 파파라치를 방불케 하는 언론에 시달려 왔습니다. 강호동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후배 결혼식이 다였지요. 그 때마다 깍듯하게 시청자와 팬을 향한 인사만으로, 소식을 궁금해 하는 대중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만을 전했을 뿐입니다.
150억을 사회에 환원하면서도 단 한번도 공치사를 하지 않았던 강호동, 문제가 되었던 평창땅은 오래전부터 후원을 해오고 있었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아산병원에 기부를 하며,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되돌려 주기도 한 강호동입니다. 강호동의 기부를 두고도 눈이 삐었거나,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이런 사람들을 인터넷 비속어 용어로  열폭종자라고 하더군요)은 방송복귀를 위해 수를 쓴다느니, 대중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참 답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시 구절이 있습니다. 안도현님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강호동처럼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했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한 힘이 되어준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강호동의 방송복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는데, 의견이 분분한 이유가 뭔가 싶습니다. 강호동은 방송에서 영구은퇴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정은퇴라는 말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강호동의 복귀를 바라는 시청자와 팬들에게 1년만에 대답을 주었을 뿐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강호동에게 1년은 하루가 일년같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왕성하게 방송활동을 하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끼가 넘치는 야생 호랑이가 동굴에 갇혀 지낸다고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답답했을지 십분이해가 됩니다. 

강호동의 복귀소식에 반가운 마음에 많은 기사들을 검색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짧은 복귀뉴스에도 특별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강호동 종편설을 당연한 사실처럼 떠벌렸던 언론들이나 부화뇌동했던 네티즌들을 부끄럽게 했을 특별함입니다. 방송 3사에 고루 복귀함으로써 의리를 지킬 것이라는 기사는 있는데, 그 어느 기사에도 종편출연에 대한 언급은 없더군요. 지금은 종편행을 택한 연예인들이 많아 종편행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 대해 많이 희석되었음에도 말입니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은 못봐도, 사람은 큰 사람의 덕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예프로그램의 쌍두마차 강호동과 유재석을, 저는 주저않고 개그계의 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열혈팬들은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과잉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강호동과 유재석은 누가 뭐래도 사이좋은 형님아우라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는 국민MC라는 자리를 누군가에게 물려줄 강호동과 유재석이지만, 그들은 같은 곳을 보고 함께 걷고, 뛰고, 서로를 응원합니다. 예능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웃게 하자, 예능을 통해 고단한 일상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자 입니다. 예능인으로서 국민에게 최고의 웃음과 감동을 주자는 공동목표입니다. 새가 한 쪽 날개를 다쳐 힘들어 보였는데, 두 날개가 다시 건강해진 느낌입니다. 빠졌던 마차의 한 바퀴를 끼운 느낌이고요.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입니다. 강호동의 방송복귀 선언으로 벌써부터 방송가에도 활기가 느껴집니다. 1년의 공백기를 가진 동안 강호동이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견뎌온 시련의 시간이 강호동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으리라 믿습니다. 멋지고 시원하게, 무엇보다 목젖까지 보일 정도로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호동행님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강호동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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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9 08:38




지난 주에 이어 추추트레인 추신수 선수의 메이저리거가 되기까지 야구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추신수의 아내와의 만남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러브스토리를 풀어놨는데요, 방송을 보면서 영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추선수의 오늘을 있게 한 야구인생 코치는 많은 분들이 있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야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체력훈련을 시킨 아버지와 외삼촌이었던 롯데 자이언트 박정태 선수, 그리고 부산고시절 만난 故조성옥 감독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추선수의 담력훈련을 위해 공동묘지 훈련은 물론 한 밤중에 학교 과학실과 병원을 보낸 일명 실미도 훈련 비화를 들으니,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담대하게 보이는 추선수의 표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투수로서 야구를 시작했지만, 투수나 타자나 1:1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추신수 아버지는 실미도 지옥훈련을 통해 추선수의 담대한 평정심을 길러 주었고,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체력을 강화시키면서, 추선수의 기초를 닦아준 분이셨지요. 외삼촌 박정태 선수는 추선수에게 꿈을 꾸게 한 모델이었고요. 삼촌과 함게 그라운드에서 같은 소속 롯데선수로 뛰고 싶은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를 맹훈련으로 달금질한 또 한 분의 아버지는 故조성옥 감독이셨습니다. 작년에 간암으로 타계해서 많은 야구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분이시죠.
부산고로 가기전 심한 연습으로 어깨에 무리가 와서 1년을 쉬고 운동을 하겠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조성옥감독에게 예외는 없었지요.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해야했다는 추신수선수, 2년 연속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하고 MVP로 선정되면서 해외구단들의 추선수에 대한 관심은 높았고,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계약을 하고, 미국으로 가면서 추선수의 미국생활이 시작되었지요.

물론 무엇보다 언어장벽으로 고생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처음 2년 반은 통역관의 도움으로 의사전달을 주고 받았지만, 영어도 늘지 않고, 친구도 없는 답답한 생활이었다고 하지요. 속마음을 일일이 통역사를 끼고 동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3년째부터는 통역사 없이 스스로 부딪쳐 보자고 영어정복기에 나섰다고 하는데, 햄버거 가게에 가서 주문하면서 무조건 "넘버 원"만 말했다며, 웃음도 선사했습니다.
추신수 선수가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야구 입문때부터 줄곧 투수로서 활동했는데, 시애틀로 가서 코치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투수로서 마운드에 섰을 때의 시절도 생각나고, 하루 아침에 타자로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일이었죠. 남들보다 몇시간은 더 열심히 연습하는 길 밖에는 없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월급은 한화 100만원 정도, 메이저리그와의 대우 차이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는데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게 실감이 되더군요.
마이너리그의 한달 100만원에 비해, 메이저리그는 시합을 뛰지 않아도 최저 연봉이 하루에 15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음식 차이는 햄버거와 초일류 뷔페로 볼 정도로 차이가 있다는데, 마이너리그에서는 음식 레벨도 다르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네요. 루키, 싱글A, 더블A, 트리플A로 나뉘는 마이너리그에서는 등급이 올라가면서 잼이 하나씩 더 추가된다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필수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스테이크(고기)도 트리플A에서나 나오는데 너무 익혀서 질기다고... 반면 메이저리그 음식은 종류별로 다양한 잼은 물론, 고기는 살살 녹는다고 차이를 설명하는데, 추신수 선수의 예능입담도 살살 녹더군요. 
가장 실감나게 차이나는 것은 대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일례로 마이너에서는 시합 후 손수 운동복을 정리해서 가방을 들고, 10시간 이상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하지요. 반면 메이저에서는 샤워하고 나오면 유니폼은 각을 잡아 개켜져 가방에 정리되어 비행기에 실려있다고 하죠. 더 실감나는 대우는 마이너리그에서는 시합을 위해 이동하는 버스에서 1인 1좌석인데 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전용기나 전세기로 이동하면서 1인 3석을 다 차지하고 간다고 하네요.
추신수 선수가 아내(하원미)와의 러브스토리도 공개했는데요, 사랑도 속전속결 그야말로 불꽃같은 초스피드의 최강러브 사연이었습니다. 비자 발급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와서 만났다고 하는데요, 우연히 아는 동생과 있다가, 동생이 사람을 만나는 동안 쇼파에서 잠들었다가, 잠깐 눈을 떴는데 천사의 강림을 봤다고 하지요. "천사를 본 순간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잠이 다 깼다"고 아내와의 첫 만남을 밝혔는데요. 당시 혈기왕성한 21세의 추신수 선수, 사랑도 화끈하게 했더라고요.ㅎㅎ. 첫눈에 반한 아내와 그 때부터 매일 만화방으로 PC방으로 찜질방으로 새벽까지 데이트를 즐겼답니다.
아내되는 하원미씨는 처음에는 야구에 대해 정말 하나도 몰랐다고 해요. "무덤에서 던지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투수가 서는 마운드를 무덤으로 표현한 것에 웃음 빵터지기도 했답니다. 지난 번 다른 방송에서 하원미씨는 추선수가 운동을 한다는 말에 "대학동아리에서 야구하는 줄 알았다"며, 자신도 운동한다고 "헬스장 다녀요"라고 말했다고, 두 사람의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었지요.
더 멋졌던 부분은 추선수의 장인과의 대화였답니다. 새벽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말만한 딸자식때문에 장인되시는 분도 얼마나 걱정이 많았고, 속상했겠어요. 그런데 추선수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당시 통금시간이 있던 아내의 집에서 딸이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날이 계속되니 난리가 났었다지요. 추신수 선수는 장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가 한 달 뒤에 미국에 갑니다. 잠깐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데 데리고 있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추선수도 화끈했지만, 장인되시는 분은 더 화끈하시더라고요. 단 3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딸이 새벽에 들어올 때부터 자네에게 다 줬네. 데리고 가게"라고 대답하고, 아내에게는 "밥 먹고 집에 가서 빨리 짐 챙겨서 가라!" 라고 했다지요. 사랑도 메이저리그 추추트레인급 사랑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는 추신수 선수는, 다시 태어나면 더 어려서 만나고 싶다고 "아기일 때부터 기어서 찾아가겠다" 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지금 두 아이를 둔 엄마 아빠가 되었는데,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는 말에는 놀랐습니다. 내년쯤에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한 추선수는, 미국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데, 추선수가 계획하고 있는 로맨틱한 야구경기장에서의 불꽃축제 속의 결혼식이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으면 악재도 따르는게 인생인가 봅니다. 메이저리그로 첫 이적하고 와서 치룬 첫경기가 전 소속팀이었던 시애틀과의 경기였고, 추선수는 그 경기에서 멋진 홈런 한방으로 우승을 이끈 클리블랜드의 스타로 떠올랐지요.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던 시애틀, 벤취에만 앉혀두었던 추신수 선수가 숨은 진주였는지 몰랐겠지만, 역시 보는 눈도 마이너와 메이저가 다르다는 것도 느껴지더군요.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홈련쳤던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나 속이 후련해지던지요.
그러나 승승장구 추선수에게 브레이크가 걸렸지요. 무리한 훈련으로 팔꿈치에 부리가 와서 인대가 끊어져 버린 사고가 이어졌지요. 재기에 성공했다는 얘기만 들었었는데, 왼손 팔의 인대를 끊어서 팔꿈치에 이식수술을 했다는 비화는 사실 저는 처음 들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6~7시간의 훈련으로 추신수 선수는 화려하게 재개에 성공하고, 동양인 최초 메이저리그 20-20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지요. "동양인 최초"라는 다섯 글자가 가장 마음에 든다는 추신수 선수,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있고, 한국인 최초 타자부분 최희섭 선수가 있었기에, 사실 추신수에게는 최초라는 단어를 붙일 부분이 없었는데, 한국을 뛰어넘어 동양인 최초라는 명예스런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된 것이죠.
추신수 선수가 최종 꿈에 대한 질문에 "야구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플레이 하나하나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선수로 기억해 준다면, 야구를 그만 두더라도 후회없이 은퇴할 수 있다"라고 대답을 했는데요,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감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외삼촌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부상에도 남들보다 두배의 고된 훈련을 감수하며 재기에 성공하고, 제발 훈련 그만하고 퇴근하라는 말까지 들었던 추신수 선수, 최선을 다하는 땀과 노력의 결과가 오늘의 추신수를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영웅은 하루 아침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수많은 시간, 자신과의 싸움에 굴하지 않는 노력의 결과가 자랑스러운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만든 자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팔꿈치 인대 이식 수술 후 재활시기에 다시 찾아온 경제적 위기와 생활고에도 추신수 선수를 메이저리그급 사랑으로 지켜 준 추선수의 소중한 가족인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에, 추선수의 앞으로의 선수생활도 특급트레인으로 쭉쭉 질주하리라 믿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과 아버지가 되고 싶어, 미국시민권 제의를 거절하고, 대한민국을 택한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 추신수 선수, 내년 시즌에도 추추트레인의 폭풍질주를 기대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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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2 12:34




지난 15일 입대한 김남길이 정말로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들고 무릎팍도사를 찾아왔습니다. 김남길의 고민은 "또 잊혀지면 어떡하느냐?" 는 것이었어요. 군복무로 활동을 하지 못할 공백기 2년, 혹시나 자신이 잊혀질까 고민스럽다는 것인데, 마치 대추나무에 사과 열릴까 걱정이고, 배나무에 감 열릴까 걱정이 돼서 찾아 온 경우 같아요. 이런 말이 있는지 그냥 써봤는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김남길은 배우로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 글에 사심이 많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제가 드라마 나쁜남자 리뷰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이유도 김남길의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는 즐거움때문이기도 한데요, 군입대를 16시간을 앞두고 급히 촬영하고 간 무릎팍도사는, 고민을 들고 나왔다기 보다는 팬들에 대한 인사를 겸사겸사 하러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의 입장에서는 너무 반갑고, 황금같은 시간을 쪼개서 나와 준 것 자체로도 고마운 선물이었습니다.
김남길이 무릎팍 도사에서 공익이라고 입대라는 말도 죄송스럽다는 말을 했지만, 김남길의 공익은 좀 사연있는 공익이라, 칭찬을 석달열흘을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대형 덤프트럭과 충돌한 사고로 인대가 파열되고, 그 이후로도 큰 수술을 2,3번 해야했던 병력때문에 면제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김남길이 자원했기 때문이에요. 어떤 분들을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가짜 진단서를 발급받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등, 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피하려는데 말이지요.

김남길은 무릎팍 도사에 나와 털어 놓은 연기경력과 MBC공채로 입사해서 교육을 받고, 이어진 교통사고로 6개월이라는 시간을 입원해야 했다는 이야기로 그의 잊혀졌던 과거 전력들을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죽음으로 하차해버렸다는 것과 강지환만 띄워줘 버렸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는데, 김남길을 예능프로에서 처음 봐서였는지, 실제로도 유머감각이 많다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어요.
선덕여왕으로 드라마사에는 길이 남을 이름으로 각인된 인물이 있다면, 미실 고현정과 비담 김남길일 듯 싶습니다. 역사서에 단 한 줄 들어있는 이름들이 선덕여왕 덕만이나 김유신 등보다 유명해져 버렸다는 것이 드라마의 힘이고, 캐릭터를 만들었던 연기자의 힘이라는 예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일 것입니다. 미실과 비담이라 하면 아마 선덕여왕을 시청하지 않은 시청자들까지도 이름은 한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주목받았던 인물들이었지요.
제가 무릎팍도사를 보면서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보며 느낀점은 말을 참 진중하고 조리있게, 그리고 차분하게 한다는 것이었어요. 대개 무릎팍도사에 나오는 게스트들을 보면 강호동의 진행에, 그리고 강호동 특유의 방방뜨는 분위기에 함께 흥분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김남길은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요. 포장하려고도 하지않고, 과거 잊혀진(?) 시간들 속에서 겪었을 심적고통이 컸을텐데도,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감정적으로도 울컥해 지기도 하고, 정말 여기서 끝인가 싶었을 때는 절망감도 컸을텐데, 감정들을 속에서 다 삭여 버리더라고요. 진지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개그감까지 있고, 고현정에게 시계선물을 받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자랑할 때는 귀엽기까지 했네요. 그리고 정말 순진할 정도로 솔직하더라고요.
강호동이 집에서 아내가 제빵왕 김탁구를 시청한다고 한 방 먹였는데, 김남길 대답이 더 웃겼어요. 집에서도 김탁구(KBS)를 본방으로 보고, 나쁜남자(SBS)는 재방으로 본다네요. 그런데 더더욱 웃겼던 상황은 무릎팍 도사가 MBC예능이었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MBC가 그 장면을 편집하지 않아서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2년의 시간, 김남길에게는 걱정이 될 것이 당연하겠지만, 전혀 불필요한 고민거리를 들고 나온 것 같습니다. 눈빛 하나로 수십가지의 감정을 보여주고, 말투 하나, 목소리톤만으로도 내면을 보여주는 배우는 그리 흔치 않지요. 비담이나 나쁜남자 심건욱처럼 복잡하고 다중적인 인물을 눈빛 하나만으로도 싱크로율 200%로 완성시킬 수 있는 배우도 많지 않을 거고요. 김남길이기에 가능했던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지요. 

잊혀질까 고민이라는 김남길에게 걱정말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팬심이 앞서서 썼는데, 너무 사심이 많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김남길의 치명적인 매력에 저도 태라처럼 중독되어 버렸나 봅니다. 여하튼 군복무로 활동을 하지 못할 공백기 2년, 건강하게 잘 출퇴근하길 바랍니다. 간간히 기사를 통해 근황도 알려주었으면 싶고요.
잊혀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2년 후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연기하고 싶은 설레임도 있다며, 김남길은 담담하게 군입대 전의 심경을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시간 체크까지 하면서 웃음도 주었고, 긴장하는 모습도 그대로 보여 주었는데요, 제가 김남길의 말 중에 가장 주목해서 들었던 말은 "비담도, 나쁜 남자도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라고 했던 말이었어요. 두 작품 모두 전율이 일 정도로 김남길의 연기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는데, 김남길이 말하는 진짜 배우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두려워질 정도에요. 
군입대전의 사진, 이 평범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에서 어떻게 비담이 나왔고, 나쁜남자 심건욱이 나왔는지, 전혀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김남길은 철저하게 작품 속의 인물이 되고, 심지어는 작품 속의 인물을 뛰어 넘어 버리기 까지 하는 것 같아요. 2년이라는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얼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김남길을 만났으면 싶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지, 2년의 공백이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김남길은 운좋게 작품을 잘 만나 뜬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작품이 김남길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실있는 배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2년 후 다시 만나게 될 깊이있고, 성숙한 김남길의 연기가 지금부터 기대됩니다. 그러니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김남길씨, 배나무에서 감 열릴까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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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07:04




한 때 거의 일주일 대부분을 각 채널 인기드라마마다 얼굴을 보였던 깊이있는 중년연기자 김갑수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빵빵 터지는 예능감에 평소 드라마에서 접한 중후한 모습 속에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꾸밈없고 유쾌하고 솔직하게, 마치 친구들끼리 뒷풀이 속풀이를 하는 듯한 편한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가 무릎팍 도사에 들고 온 고민거리는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죽어서, 좀 오래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김갑수처럼 드마마에서 단골로 죽어주신 분도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올해 봄에 유독 많이 죽었지요. 거상 김만덕에서, 제중원에서, 그리고 신데렐라 언니에서 연타로 요일별로 죽여 버렸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올해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년의 작품에서도 대부분 죽음으로 하차를 했던 것 같네요.
그럼에도 출연한 작품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심지어는 죽어서도 귀신으로까지 등장을 하면서 절대적 존재감을 이어갔던 일명 단명배우 김갑수, 사실 예능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방송을 보면서 예능본좌를 넘볼 수 있을 절대적 예능감까지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갑수렐라님께서 이렇게 웃겨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목소리도 드라마에서의 중후함보다는 친근했고, 저는 말을 그렇게 빨리 하는 분인줄도 몰랐어요. 드라마에서는 대사가 항상 묵직하고 느릿하면서도 힘이 있었기에 평소에도 그런 어투를 쓰는 줄 알았거든요.
죽어도 죽지 않는 남자, 이 표현이 김갑수에게 가장 어울렸던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 역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갑수(구대성)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짧은 분량만으로도 극의 전체 흐름을 이끌 정도로 강렬했던 것이 신데렐라 언니 구대성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캐릭터였지요. 
김갑수는 엔딩장면에서까지 영정사진으로 등장하면서 극의 중심축 역할을 했고, 은조와 효선이라는 의붓자매의 화해와 용서로 이끌며 죽어서도 살아있는 존재감을 보여주었지요. 무릎팍도사에서 회상씬은 50%, 영정사진이 출연료의 10%를 받는다는 것도 알려주었는데, 처음 안 사실이었네요.
제가 김갑수의 출연 작품을 대부분 봐왔는데, 저 역시 태백산맥에서 염상구 역할을 한 김갑수의 강렬한 연기를 보고 김갑수라는 이름을 머리 속에 새겨 버렸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극장에서 태백산맥을 보고 나오면서 지금 말로는 김갑수의 미친 존재감이 보여주는 연기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김갑수를 다시 본 작품이 토지에서 서희를 괴롭히고 평사리 서희의 재산을 삼킨 악역 조준구 역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악역을 실감나게 보여 주었는지 추악하고 비열한 조준구의 강렬한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네요. 
방송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제가 김갑수의 연기력에 소름끼쳤던 작품이 있었는데, 작년 작품 <혼>이라는 드라마였어요. 몸에 뱀을 칭칭 감고 사악하게 웃는 모습 하나로 '악'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표현했었지요.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김갑수와 이서진의 인상적인 연기로 지금도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언젠가 기사에서 바이크 타는 갑수본좌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무릎팍 도사에서 털어놓는 김갑수의 평소 모습을 보고는 정말 깜짝깜짝 놀란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어요. 샌드위치를 좋아하고, 미니홈피를 관리를 위해 노트북을 백팩에 짊어지고 다니고, 최근에는 트위터에까지 합류했다는데, 김갑수가 좋아하는 가수가 에미넴이라는 말을 듣고는 정말 와! 싶었네요. 에미넴은 제 고등학생이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데, 신세대 못지 않은 젊은 감각이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무릎팍 도사를 보면서 김갑수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 것은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소탈하고 격없는 모습이었어요. 극중에서 보여주는 근엄한 무게감이 아닌 편안함은 극중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거든요. 녹화 몇분만에 강호동과 유세윤 등 현장분위기가 친구들 모임처럼 화기애애하더라고요.
54세의 중견연기자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방송에서의 비화들때문에 한참 웃었는데요, 저 역시 재미있게 봤던 노희경 작가의 슬픈유혹에서 주진모와의 동성애 설정으로 곤혹스러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주진모의 등을 보고 애틋한 감정 내지는 연정을 느꼈어야 했는데, 그냥 주진모의 등이라고만 생각이 들었다며, 전혀 감정몰입이 되지 않았다는 말에 빵 터졌습니다. 사실 전혀 몰랐거든요. 파격적인 동성애 소재였지만, 그 감정들을 잘 표현했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더 웃기더라고요. 역시 연기 내공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어찌 보면 배역에 감정몰입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 연기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같이 들리는데도, 몰입하지 못했다는 그 솔직함이 더 좋아보이더라고요.  
시종일관 호탕하고 유쾌한 웃음을 보여준 무릎팍 도사에서 김갑수가 한 말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품에 임하는 그의 자세였습니다. "분량을 따지지 않는다. 분량이나 역할이 작아도 내가 얼마만큼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느냐? 그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김갑수가 올해 유독 많이 죽음으로 하차했는데도, 오히려 시청자에게는 더 깊게 각인된 존재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거에요. 출연 2회만에 하차해 버린 아이리스의 목소리 주인공 역시도 아이리스의 비밀을 쥐고 있던 핵심인물이었고, 극중 이병헌(김현준)의 과거 부모와 현준의 어린 시절까지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기에, 목소리 주인공이 누구인지 네티즌들끼리 정답 알아맞추기 까지 했을 정도였지요. 감갑수의 존재감은 깁스를 하고 전신마비된 모습만으로도 강렬해서 허망하게 죽어 버린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김갑수가 선배연기자로서 후배연기자들에게 한 마디했는데, "정말 연기를 열심히 해왔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도 이 정도의 배우밖에 안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이 정도도 되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이 정도의 배우밖에 안된다며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김갑수가 극에서 일찍 죽어 하차를 하든 끝까지 나오든 그의 존재감과 연기력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지요. 태백산맥이라는 대박작품으로 하루 아침에 벼락스타가 된 것도 아니었고, 김갑수는 오랜시간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아 왔었기에, 님의 침묵에서의 한용운 역이나 태백에서의 염상구, 토지의 조준구, 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으로 갑수렐라 갑수본좌 등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요.
김갑수가 얼마나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임해왔는지는 선배들의 연기를 배우기 위한 노력에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롤모델인 이순재, 신구, 박근형 등의 연기를 배우기 위해 3분 단역도 마다않고, 신구 님의 연극에는 스태프를 자원하기 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는데요, 요즘 젊은 배우들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역할만 하려고 든다는 겁니다. 자기가 잘하는 역할로 쉽게 가려하지 말고 잘하지 못하는 배역에 도전을 해야한다고 말이지요. 무명과 배고픔의 시간을 거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그의 프로정신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 더 빛이 나는 배우, 죽음으로도 존재감이 살아나는 배우를 쉽게 만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짧은 분량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54세 중년의 김갑수, 새로움에 도전하고 즐기는 신세대적 감각까지 갖춘 그가 무릎팍도사에서 풀어놓는 유쾌한 모습에 많이 웃었습니다. 중년이라는 나이도 잊어버리게 하는 예능감이었고요.
무릎팍도사 김갑수 편을 보면서 사실 많이 웃기도 했는데, 김갑수에게서 묻어 나오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들으면서 '혼신을 다한다'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분량이나 역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역에 혼신을 다한다는 것, 누구나 쉽게 흉내내지 못하는 김갑수가 보여주는 존재감의 비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진 중년 명품배우 김갑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기대되네요ㅎ.  
김갑수가 드라마 작가들에게 부탁한다며 "단명이 언짢기는 하지만 제가 꼭 죽어야 한다면,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잊지않고 터뜨려주는 예능감, 정말 죽여 주시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이럴 때 '쩐다' 라고 하던데, 정말 쩔더라고요. 
이어서 "강렬하게 오랫동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게 안된다면 회상씬도 좋습니다" 라고 타협안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습니다.ㅎㅎ. 10% 출연로 나온다는 영정사진도 괜찮겠지요? 김갑수의 바람대로 작가분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오래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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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7 07:38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시>를 두고, 한국 언론이 떠들썩했었지요. 수상을 했다는 것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작품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시끄러웠고, 심지어는 빵점을 주었던 심사위원까지 있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쟁쟁한 헐리웃 스타들 속에서 고운 한복을 입고 카펫을 밟은 윤정희씨의 모습을 이곳 캐나다 뉴스에서도 잠깐 봤었습니다. 윤정희씨의 한복을 입은 모습만으로도 흥분되었고,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피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었을 겁니다. 
은막의 여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윤정희씨의 모습을 연예오락프로인 무릎팍도사에서 보게 되어 기뻤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린시절 윤정희씨의 영화를 수십편은 봤던 세대이고, 과거 대한민국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화려한 은막의 스타를 예능프로에서 본 것 자체가 그 감회가 남달랐어요. 데뷔한 지 44년, 대한민국 영화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문희, 故남정임과 함께 1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배우 윤정희, 그녀를 무릎팍도사에서 보고 난 느낌은 '삶 자체를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 가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뷔 후 7년동안 300 여편의 작품을 찍고, 역대 최다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던 윤정희씨가 돌연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당시 메스컴에서 난리가 났던 것도 기억납니다. 유학 중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결혼으로 세기의 화제가 되었던 기사도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네요. 

윤정희씨가 2010년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로, 세계를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해외 언론의 윤정희씨에 대한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5분으로 제한된 칸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10분을 넘게 받았다고 하지요. 우리나라 영화의 자랑스러운 쾌거에 가슴이 뜨거워졌던 감동이었습니다.
"<시>의 미자는 오직 윤정희였기에 가능했다"는 프랑스 르몽드지를 비롯해 각국의 언론에서 찬사를 쏟아냈던 히로인 윤정희, TV를 통해 본 그녀는 세계를 놀라게 한 화려한 은막의 여왕이 아니라, 곱게 나이 든 해맑은 소녀같았습니다. 66세가 되어도 낭만을 꿈꾸고, 동화처럼 살아가는 그녀, TV를 보면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것은 세월을 고스한히 얼굴에 간직한 자연미와 해맑은 웃음이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소녀같아서, 지나 온 삶이 참 고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웃음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잖아요. 윤정희씨의 웃음이 그런 느낌을 주었어요.  
영화계의 전설을 게스트로 맞이한 강호동도 계속 긴장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강호동의 긴장을 풀어준 것은 오히려 윤정희씨였지요. 강호동이 마음에 든다고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다는 남편 백건우씨와의 연애 비하인드 스토리 한토막도 들려주기까지 했는데,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이 그녀가 살아 온 세월의 깊이만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윤정희의 천생연분 백건우와의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에 대해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잡지 혹은 TV를 통해서 들어봤음직 했었을 겁니다. 저 역시 윤정희에 대한 기사는 눈에 띄는 대로 읽어왔던 지라 파리에서의 생활, 살림하는 모습, 부부가 다정하게 파리 거리를 걷는 모습 등은 여러번 봤었지만, 몽마르뜨 언덕에 그들만의 사랑의 아지트를 보러 다녔다는 스토리는 처음 들었어요. 그녀의 입을 통해 결혼 전 함께 지낼 방을 구하러 다녔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면서, 60세가 넘어서도 소녀같은 수줍음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 놀라웠어요. 결혼 전에 함께 지냈다는 것보다는 그 시절, 비밀스럽게 나누었을 두사람의 추억의 시간을 회상하는 윤정희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시상직장의 반응이 뜨거웠기에 여우주연상을 기대하지 않았느냐는 강호동의 질문에, 황금종려상을 받길 원했다는 말을 듣고, 역시 큰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우주연상은 윤정희 개인의 영광이고 기쁨이지만, 황금종려상은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들의 영광이니까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갔던 윤정희가 44년의 배우생활을 해오면서, 개인적인 영광을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큰 배우의 생각은 다르더군요. "배우 은퇴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윤정희는 90세가 되어도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란 삶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60대, 70대의 삶이 있듯이 90대의 삶이 있을 것이다. 90세가 되어도 매력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라면서요. 윤정희에게 배우는 평생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서도 윤정희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필요이상의 화려한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윤정희씨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화려한 은막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이 부부의 공개적인 프로필에 불과할 뿐이었어요. 남편은 장보기를 좋아하고,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지하철을 이용하고, 해마다 멸치젓갈을 담그고, 그 젓갈로 김치 담궈 먹는다는 윤정희, 스크린에서는 배우이지만, 평소에는 남편과 연애하듯 살아가는 순수해서 너무 아름다운 주부일뿐이었습니다. 
90세가 되어서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66세 윤정희의 희망을 들으면서, 우리가 윤정희라는 배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젊은 배우들에게 조차 흔한 얼굴주사 하나 맞은 흔적 없이,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배우를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가 되어 버렸는데, 세월에 순응하는 그녀를 보니 주름살까지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소녀처럼 순수한 감성,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 모습, 그래서 더 아름다운 윤정희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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