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4회' 웃기는 세종 한석규, 허를 찌르는 완벽한 반전 (1)
  2. 2011.11.12 '뿌리깊은 나무 3회' 서서히 드러나는 세종 이도의 야망 (2)
  3. 2011.10.11 '뿌리깊은 나무' 송중기(이도)의 난, 아버지와 다른 나의 조선은... (6)
  4. 2011.10.11 '뿌리깊은 나무' 백윤식-송중기, 첫회 사로잡은 대조적 매력
2011.11.12 09:26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사랑받았던 젊은 세종 송중기에서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넘치는 괴짜군왕 한석규로의 변화는 완벽한 캐릭터의 반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세종을 다룬 사극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세종을 만난 듯합니다. "이방원없는 천하다"라며 한줄기 눈물을 흘리는 송중기의 모습이 연못에 일렁이고, 중후한 세종 한석규로 바뀌는 과정은 빼어난 영상미로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변화를 담았지요. 이번 뿌리깊은 나무 4회에서 최고의 영상미로 꼽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곱고 여린 노랑나비가 호랑나비로 변해 연못을 나는 모습은, 젊은 세종과 중년 세종의 함축적인 캐릭터의 변신을 담아낸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죽음도 가볍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태종 이방원(백윤식), 두 부자는 죽는 순간에도 논쟁을 멈추지 않았지요. 태종의 독설과 염려도 여전했고 말이지요. "내가 갔던 길보다 훌씬 더 참혹할 게야. 훗날 넌 반드시 내 무덤 앞에 무릎꿇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고백하며 울 것이다". 세종을 마지막까지 시험해 보는 태종이었지요.
"그럴 일 없을 것입니다. 조선의 임금은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니까요"라며, 태종이 했던 말로 응수하는 세종. 태종은 세종의 멱살을 잡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지요. "해내거라, 그래야 네놈을 왕으로 세운 제일 큰 업적이 될 거이니...". 세종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짓는 태종, 그의 마지막 눈빛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조선의 찬란한 문화르네상스를 연 성군 세종대왕이니, 진실로 태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종대왕을 낳았다는 것일 겁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릴 수나 있었겠습니까? 머리 터지게 한자랑 씨름했겠지요.

한석규의 세종은 어떨까? 한마디로 명불허전입니다. 정확한 발음발성,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력, 게다가 그 파격적 캐릭터 변신은 "그래, 바로 그거야"라며 흥분하게 했답니다. 온화한 듯 진지한 듯 감을 잡기 어려운 표정으로 "하례는 지랄...", "젠장, 우라질"이라는 거친 말들이 튀어나오는데, 곤령포 입은 지엄한 임금님께서 입단속을 그리 안하시는 모습에 뻥뻥 터졌고, 궁녀에게 "우라질이 맞느냐?"며, 진지하게 물으며, "과하게 많다, 우라지게 많다, 우라질...이 얼마나 내 정서를 잘 표현하였느냐? 궁궐에는 이런 말이 없어"라며, 경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한석규의 세종은 대박이었습니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인간 세종, 군주 세종의 새로운 캐릭터로서도 대박입니다.

세종의 거친 말속에도 우리글의 필요성을, 한글을 만들어야 하는 세종의 집념을 제대로 담아냈고 말이지요. 경연장에서도 당태종이 어땠고, 고려왕조에서 어땠고, 주자선생이 어땠고 하는 고리타분한 그놈의 경서 읊조리는 신하들을 한자로 '우라질"이라고 몰래 적으며, 자신의 정서를 기록하는 세종이었죠ㅎ. 운동이 부족해 옥체가 상할까 저어된다고 하도 난리들을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신경쓰지 말라며 스트레칭을 하는 세종은 또 어땠고요. 능청스러운 세종의 모습까지 감히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새로 등장한 세종은 물건입니다(죽여주시옵소서). 
웃음보터진 성삼문(현우)의 허벅지를 꼬집는 박팽년(김기범) 등 샤방샤뱡 빛나는 젊은 꽃미남 학사들도 등장해서 눈까지 호강했는데, 괴짜스러운 천재 성삼문과 박팽년의 대조적인 캐릭터도 눈여겨 봤답니다. 

그러나...여기까지의 세종을 보고 웃기는 임금님일세 라고 하면 큰 코 다칩니다. 경연의 주제 '부민고소금지법'을 선왕대에 이미 금지된 법을 왜 다시 경연을 하시느냐고, 그 불피요함에 대해 미주왈 고주왈 남의 나라 법과 경전을 들어 반대하는 신하들을 입도 딸싹 못하게 눌러버리는 언변과 논리는 오금저리게 만들었지요. 이현령 비현령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대로만 해석하려드는 기득권자들을 완벽한 논리로 박살내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말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끝마다 주자 주자를 거론하는 탁상공론자들에게, 주자께서는 한시도 백성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경전의 행간을 읽으라는 세종의 일갈은 참으로 멋집니다.

이번 경연의 하이라이트는 "전하께서 한가지 질문을 빠뜨렸다" 고 지적하는 성삼문(현우)때문에 벌어진 상황입니다.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세종의 질문은 두 가지였죠. 첫째, 성리학의 나라에서 감히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고변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데 간관들이 내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긋나지 않는 것이냐? 둘째, 백성들의 고소마저 금지한다면 수령들은 왕보다도 제약이 없게 되는데, 이들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다고 성삼문이 감히 왕에게 지적을 하지요.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린 놈이 뭘안다고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어른 말씀하시는데..."였죠.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는 세종, "바로 이것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식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 게임 끝입니다. 반어와 비유, 헛점을 낚을 유도심문까지, 참으로  우라지게 박학다식 논리정연한 세종!!! 말까지 서민적이고 우리정서에 꼭 맞는 표현만 골라서 하시고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의 죽음과 비바사론(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의 증발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이 "이런 빌어먹을"이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모습도 나왔지요. 실제로 세종대왕이 욕을 잘했다는 것도 전해지는데, 궁궐에 임금이 사용해야 하는 욕을 궁중용어로 따로 만들어 가르치지도 않았을테니, 감정대로 욕나오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임금도 사람인데 말이지요. 
무엇보다 눈여겨 보아야 하는 대목은 임금이 궁녀들에게 저잣거리의 상스러운 백성들 말을 배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우라질처럼 한자로 옮겨적을 수 있는 말들은 그나마 표기라도 할 수 있지요. 젠장, 빌어먹을 같은 말을 어떻게 한자로 표기해야 할지 참 깝깝한 일이지요. 부민고소금지법에 대한 경연을 통해서도 한글, 우리글이 왜 반드시 필요한 지를 말해줍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성군의 덕목이지요. 헌데 그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니 글로 적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수령들이나 관리들이 지들 욕하는 백성들의 입을 자기들 편한대로(위 아래 엄격한 규범이 있는 주자학에 위배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이렇게 막고 있으니 말이지요.

집현전 학사 허담과 김종서의 6진에서 무관 고인설 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첫회 강채윤(장혁)이 세종 암살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장면으로 다시 이어지면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종서의 추천으로 겸사복으로 궁에 들어온 강채윤(똘복이), 첫날부터 여기저기 궁을 들쑤시고 말썽을 일으키면서 무휼과 세종의 눈에 띄게 되었지요. 오로지 이도의 암살만이 목표인 강채윤이 집현전에서 일어난 사건현장에 잡입했다가 무휼(조진웅)에게 걸리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지요. 
고인설과 허담을 죽인자는 같은 놈이라 생각한다며, 고인설 수사일지를 보여주며 위기를 넘긴 강채윤은 때마침 취조현장에 온 세종과 다시 재회합니다. 고인설 수사일지를 본 세종이 허담 살해사건을 수사하라는 명을 내리고, 강채윤은 비밀수사원으로 집현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도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을 해결하면 어사주를 내려달라는 간청을 한 강채윤, 집현전에서 발행하는 연쇄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강채윤은 세종의 조선과 마주하게 될 듯합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석삼이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이도의 조선, 임금을 지랄이라고 증오하는 한지골 똘복이가 더이상 없는 조선, 지랄을 지랄로, 우라질을 우라질로, 백성의 소리를 그들의 말로 쓰고 읽고 듣고 싶어하는 이도의 조선을 말이지요.

주인공들이 코믹과 진지를 겸한다는 것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극에서는 말이지요. 동이에서 숙종 역의 지진희가 그 경계를 허물어서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세종 역의 한석규도 인간적인 세종과 카리스마 세종으로 그간 정형화된 세종대왕의 캐릭터에 파격을 감행했는데요, 한석규의 세종이 너무나 멋지네요. 역시 지도자는 사람냄새가 나야 더 가까움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아무리 백성백성, 국민국민 떠들면 뭐합니까? 경연을 펼치던 신하들처럼 경서 나부랭이나 줄줄 읊어대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과 진배없는데 말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업적, 최고의 존경을 받는 성군 세종대왕, 한글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말하기 전헤 더 먼저 칭송하고 감사하고 되집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의 결정체이니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마음입니다. 국민들을 어여삐 좀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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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09:23




(저작권 침해로 삭제된 글의 재발행입니다.)
탄탄한 극본, 힘있는 연출, 송중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뿌리깊은 나무 3회, 밀본지서를 가지고 반촌에서 도망치는 정도광을 가로막고 말을 빼앗아 달아나는 똘복이, 그 과정에서 똘복이의 잃어버린 복주머니는 그에게 궁으로 가야 하는 복수의 이유를 되뇌이게 합니다. 반촌에 군사를 풀 수 있는 자는 오직 한사람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를 죽게 하고, 아버지의 유서마저 임금때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똘복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밖에 남지 않은 듯한데,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에 이를 듯하더군요. 광기어린 어린 똘복이의 괴성이 회가 갈수록 거북스럽게 여겨져서 참... 하긴 송중기의 아역 충녕대군과 정기준의 아역연기는 뭐라 할말이 없게 만드는 심각한 수준이었답니다. 아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기가 참 거시기 하더구만요.
 
쫓기는 자 정도광, 정도광을 잡으려고 반촌에 난입한 조말생(태종측), 정도광과 정기준을 구하려고 온 무휼(세종측)의 일촉즉발 대립 속에, 멋모르고 또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된 똘복이, 세종 이도가 꿈꾸는 조선도 그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세종, 그들의 조선이 다름을 정기준을 찾으려는 이유의 다름을 통해 드러냈지요. 태종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위해 정기준을 없애야 했고, 세종 이도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은, 1 하나가 아닌 23456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는 모두의 조선이었기에, 정기준이 상징하는 정도전의 사대부 세력을 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모두의 조선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태종의 조선은 군주의 한 사람의 나라였지만, 세종의 조선은 조선백성 모두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이념 민본주의를 재선포한 것입니다.
왕자의 난과 공신들의 숙청을 통해 왕권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 조선은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삼봉 정도전을 살해한 이방원에게 사림은 등을 돌렸고, 대의와 명분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대부들에게 이방원은 주자의 도를 모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말합니다. "전장을 누비며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제거하고, 태조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실질적인 공은 다름 아닌 이방원의 '칼'에서 나왔다고, 따라서 조선은 나의 것이다라고...".
그런 이방원에게 "군주가 꽃이라면 그 뿌리는 재상(신하)이다. 꽃이 부실하다 하여 나무가 죽는 것이 아니나, 뿌리가 부실하면 나무가 죽는다. 부실한 꽃은 꺾으면 그만이다". 한마디로 왕이 뚯대로 따르지 않으면 폐하면 그만이라고 지하동굴에 새겨놓은 삼봉의 글귀는 이방원에게는 간담서늘한 경고였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꽃은 꽃일뿐 뿌리가 되지도 뿌리를 없애지도 못하오"에 대한 설명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왕은 한 나라의 얼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밀본의 정체는 정도전의 나라(사대부의 나라)를 사수하라는 밀명이었던 셈입니다. 

세종은 이방원보다 더 야망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세종이 어린 시절 본 것은 '칼보다 강한 글의 힘'이었습니다. 과장에서 나온 한장의 종이가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급기야 열대여섯의 어린 유생을 찾아 죽이려는 것을 본 이도는 아버지 태종의 칼을 떨게 한 것이, 다름 아님 글이었음을 본 것입니다. 세종이 문치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버지 태종의 나라보다 강한 조선, 영원무구한 조선을 꿈꿨기 때문인 것이지요. 조선의 글이 필요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이도입니다. 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조선, 세종에게는 수치였을 겁니다. 세종은 유약한 임금이 아니었고, 국방에서도 적극적인 임금이었습니다. 김종서로 하여금 6진을 개척하게 하고, 국경을 확장한 것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장에서 태종 이방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린 유생 정기준, 세종이 훗날 태종과 군주과 국가관을 극명하게 달리 하게 한 인물입니다. "왕은 허군이고, 실군은 재상이다. 이것이 조선을 건국한 삼봉선생의 치국 기본사상이었다"는 답안을 본 이도는 그 담대한 답안에 놀라 정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글을 본 태종 역시 조말생을 시켜 정기준을 쫓게 됩니다. 정기준은 정도전의 아우 정기광의 아들이었고, 태종은 정도광의 집 지하동굴에서 벽에 새겨진 정도전의 글을 보고 경악합니다. 정도전이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너의 아버지는 삼봉의 나라를 훔친 도적이며, 살인자다"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주먹을 날리는 이도, 그런 이도에게 정기준은 "네 아버지와 다를 바 없구나"라며 비웃음을 날리죠. 정기준의 집은 이미 병사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고, 이도의 만류에도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담대하게 자신을 밝히며 걸어나가는 정기준을 보고 이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정기준의 말은 두고두고 어린 이도를 괴롭혀 온 숙제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과도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정기준을 향해 칼이 내려치는 찰나, 정도광은 아들을 구해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정기준이 숨어있는 이도를 향해 지은 비웃음이 이도를 짓눌러 왔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비밀리에 밀본을 추적해 오던 조말생의 움직임을 보고 받은 세종은 정도광, 정기준을 쫓는 것임을 직감하고 무휼을 보냅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오라"는 명과 함께 말이지요. 태종이 보낸 빈찬합을 보고 마방진을 풀어낸 이도, 그의 마방진, 그의 조선이 아버지와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했기에 세종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태종에게 "살려만 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면서 까지 태종과 한판승부를 벌인 세종이었지요. 겉으로는 효심깊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는 살려준 듯하나, 은밀하게 주고 받는 태종과의 설전에서는 "제 방식대로 방진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세종이었지요.

세종 이도가 내놓은 방진의 답은 '문이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태종은 그런 세종에게 밀본에 대해 아느냐며 정기준의 생존에 대해 언급하지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세종 이도에게는 지난 날의 깊은 상처가 지나갑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오래도록 짓눌러왔던 정기준의 조소에 대한 답을 구한 이도,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하지 못했던 답을 말해 줄 것입니다. "조선은 정도전의 나라도, 내 아버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다. 조선의 뿌리는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세종이 신분을 망라한 평등한 세상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아무리 임금이었더라도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은 건국이념은 성리학입니다. 성리학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성리학은 계급을 초월한 학문이나 이념은 아니지요. 하늘과 땅의 위치가 불변이듯, 상하 지배 피지배관계가 불변한 이치이며, 그 이치안에서의 조화를 말했던 학문이죠. 백성을 통치대상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가르치고, '인'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철학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부분이죠. '군자(사대부)는 학문과 백성을 가르치는데 힘쓰고, 소인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익히 들어온 문구만을 봐도, 그 근간에는 계급적 질서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종이 꿈꾸는 조선도 성리학이 가르치는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제역할을 하는 조화를 이루는 세상입니다. 그 조화에 정기준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사대부 세력은 반드시 필요했고, 왕과 신하(사대부)와의 평화는 피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칼은 폭정이었고, 조선의 불안이었습니다. 모든 왕조(나라)의 숙원은 대대만년 그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존속되는 것일 겁니다. 세종과는 방법적으로 달랐지만, 태종이 칼의 정치를 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세종은 대대만년 조선을 지킬 수 있는 답을 칼이 아닌 조화에서 구합니다. 

세종의 눈에 비친 아버지 태종의 나라는 이 조화가 깨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마방진은 정도전의 통치이념과는 다릅니다. 정도전은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사대부의 나라는 이방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권력의 핵심 ' 마방진의 1'에 사대부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지요. 세종의 조선은 왕의 나라도 아니요, 사대부의 나라도 아닌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꿉니다. 그의 마방진은 모든 숫자들, 조선의 백성들 모두를 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제목이 왜 뿌리깊은 나무인지가 드러납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무엇을 뜻하는 지도 말이지요. 뿌리깊은 나무의 '나무'는 세종이 꿈꾸는 거대한 마방진, 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뿌리는 '백성'입니다. 정도전이 말한 밀본이 사대부를 지칭했다면, 세종은 백성으로 대상을 확대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른다는 용비어천가의 첫구절은, '조선의 영원무구함'을 염원한 노래한 세종의 원대한 청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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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47




무소불위의 살아있는 권력 이방원에게 맞서는 젊은 세종 이도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지요. 그보다는 송중기가 노장 백윤식의 기에도 눌리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연기력을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습니다만... 송중기의 난이라고도 부르고 싶은 뿌리깊은 나무 2회였습니다.
나약하고 움추려있던 이도의 모습을 버리고, 아버지 태종에게 맞서는 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감히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양수 공손히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리기만 했던 모습과는 다른 변화였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그의 첫백성이라고 칭한 똘복이를 살렸다는, 그리고 살릴 것이라는 의지가 깔려있었지만, 확대하면 태종 이방원이 아닌 자신이 조선의 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살린 백성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신열같은 희열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했다는 자신감같은 희열말입니다.

이도의 난,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의금부로 발길을 돌린 이도의 눈앞에는 죄인들이 파옥을 하고, 관군들에게 죽어가는 살육의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외숙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던 날, 말에 실려 도망을 치던 자신의 모습과 같은 어린아이를 보게 되지요. 똘복이를 구한 이도에게 태종의 진노는 하늘을 찌르고, 똘복이를 죽이라는 명을 합니다. 왕명이라는 태종의 말에, 핏발서린 이도의 눈에는 그가 살린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그의 온전한 백성, 똘복이를 살려야 한다는 결의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도는 어린시절 어린 숙부들과 외삼촌들이 아버지의 칼에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을 뿐입니다. 방진은 어린 이도에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정치와 아버지를 잊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왜 그리하느냐는 질문을 감히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법이었고, 조선이었고, 대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의 대의와 자신의 것은 다르다라며, 이방원에게 대적합니다. 이는 대적이었습니다. 강한 왕권, 누구도 맞서는 이가 없는 절대군주 이방원(혹은 왕권)에게 맹목적인 충성만을 요구했던, 또한 그것이 그의 대의였던 이방원에게 이도의 반기는 '난'에 버금가는 일이었죠. 송중기가 이도의 감정을 완벽하게 풀어낸, 송중기의 연기가 돋보였던 태종과의 한판승부를 이도의 난, 혹은 송중기의 난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왕을 참칭하지 말라. 상왕은 왕이 아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진노한 태종이 똘복이를 참하라는 명을 하자, 자신부터 죽이라고 칼을 던지는 이도, 우왕 짱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태종은 이도에게 진짜 칼을 들이대 버리지요. 헉, 자식의 목에 칼을 겨누는 아버지라, 이어지는 송중기의 폭풍 카리스마에 명령을 받은 무휼(조진웅)을 온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시청자의 사랑까지도 한손에 거머쥐었다는 후문ㅎ...

"무휼!!!!! 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면 너는 즉시 임금을 시해한 자의 목을 쳐야할 것이다. 사사로이는 아버지나 무휼 너는 공의로서 대의로서 너의 직분을 다하라. 이것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왕, 이도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명이다". 아버지를 베라는 명을 한 이도, 결국 태종 이방원은 칼을 내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도앞에 칼을 던지며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자리를 뜨지요. 풀석, 긴장이 풀려 쓰러지는 이도....

지는 해 태종 이방원, 뜨는 해 세종 이도

자신부터 죽이라며 칼을 던진 이도, 그리고 자신을 죽이라는 명을 내리는 이도를 보며, 태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태종은 그의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도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겠지요. 팽팽한 긴장감, 주변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서책에만 빠져있던 여리고 착하기만 한 아들, 그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조선을 짊어지게 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드라마를 보는 시선이 다르겠지만, 저는 태종이 세종의 반기에 진노했다기 보다는 담대함을 시험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빈찬합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혀졌던 부분이고, 강무장에 군사를 집결해 군사훈련을 시킨 것도, 현재의 왕 세종을 치겠다는 위협적 제스쳐라기 보다는, 자신을 넘어서 보라는 시험의 일종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태종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죠. 고려왕을 죽이고 새 왕조를 열었지만, 그가 세운 조선도 누군가의 손에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입니다. 강하지 않으면 지켜내지 못한다는 불안감, 그것이 그가 잔인한 피의 살육을 했던 이유였고, 형제의 난까지 치뤄야 했던 까닭이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조선, 강한 왕이 그의 대의였고, 강한 군주만이 그가 세운 조선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그러나 이방원은 피에 의해 세워진 조선이 피로 유지되길 바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후계를 그의 성정과는 달랐던 충녕 이도로 지목했던 것은, 피는 그의 손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었겠죠. 이런 생각으로 태종은 그의 대에서 왕권에 위협적일 수 있는 세력은 공신, 외척, 피붙이라 할지라도 제거를 했고, 온전히 군왕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만 조정을 채워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했을 겁니다. 세종치세에 한글창제를 둘러싸고 사대부와 대립한 것을 제외하고는 왕권에 반발하는 어떤 쿠테타 세력들도 없었다는 것은, 태종이 사전작업을 깔끔하게(?) 처리해준 때문이기도 합니다.
 
태종의 빈 찬합의 의미와 이도의 답, 나의 조선은...
똘복이를 살리고자 태종에게 반기를 든 댓가는 이도에게는 참담함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옥좌를 버릴 생각을 하지요. 빈찬합은 조조가 순욱에게 자결을 명했던 예시였기에, 빈찬합의 의미에 이도를 비롯한 소헌왕후, 조말생(이재용)까지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지만, 태종의 의도는 자결에 있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빈찬합을 보낸 의미를 저는 두가지로 봤습니다. 하나는 이도에게 너의 대의, 너의 조선은 나와 어떻게 다르냐에 대한 답을 담으라는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태양 이도에게 이제는 자신과 다른 너의 조선을 담으라는 의미로 봤습니다.
아버지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도, 그 막연한 다른 세상에 대한 답을 이도는 끝내 얻었고, 강무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은 담대하고 거침없었습니다. 화살이 빗발치는 속으로 담대하게 걸어가는 이도, 그의 위로는 그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세종 이도의 조선, 피의 살육이 이어질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진으로 숨어버렸던 그는, 오래도록 그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던 마방진의 답을 구했습니다. "나의 조선은, 나의 조선은 삼봉 정도전이 꿈꿨던 신하의 나라도 아니며, 아버지가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군주의 나라도 아니고, 조선의 백성들, 지랄들을 위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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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0:32




대장금, 선덕여왕의 작가 김영현과 박상연, 여기에 말이 필요없는 필모그래피의 연기자들, 연출 장태유 감독. 이쯤되면 가공할만한 메가톤급 쓰나미에도 끄덕없을 막강 드림팀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뿌리 튼실하고 깊게 내릴 드라마가 탄생될 것이라는 거죠. 궁궐과 반촌을 무대로 정통사극과 무협, 멜로, 미스터리 추리과학수사극을 한 드라마에서 짜임새있게 풀어내기란 쉬운 작업은 아니지요. 김영현-박상연 작가, 장태유감독이라면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풀어내리라는 믿음을 줍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던 '뿌리깊은 나무' 1회였습니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한석규, 중후하고 독특한 카리스마가 일품인 백윤식, 추노의 장혁, 신세경, 젊은 이도(세종) 역의 송중기를 내세운 뿌리깊은 나무 첫회는 한마디로 명품사극의 탄생을 예고하며, 빠른 전개로 전개되었는데요, 각 캐릭터들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입니다. 태종 이방원 역의 백윤식은 그간 사극에서 보았던 이방원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 중후하고 침착한 언변에도 오금을 저리게 하더군요. 눈에 레이저를 달지 않아도 레드썬이었습니다. 화면을 압도하는 중저음의 카리스마, 부드럽지만 서릿장같은 냉혈함을 느끼게 한 백윤식의 극중 무게감은, 후원연못에 던져지는 낚시대처럼 팽팽하고 날카롭게 전달되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더군요. 역시 말이 필요없는 내공연기자...
젊은 이도(세종)역의 송중기는 성균관들 스캔들이후 사극에서 다시 만났는데, 사극에 어울리는 귀티나는 마스크라는 것이 또 한번 입증되더군요. 상왕 태종의 숙청작업을 힘없이 지켜봐야 하는 나약한 군왕의 고뇌를 풍부한 감정선으로 깊이있게 전달했습니다. 송중기의 연기 스팩트럼이 큰폭으로 넓고 깊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연기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상왕에게 드러내놓고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파파보이의 모습도 아닌 단호함과 고집스러운 모습이 느껴지는 복잡한 내면을 잘 표현한 듯 싶습니다. 소헌왕후 역의 여배우의 대사처리와 감정표현이 송중기의 고뇌와 번민을 담은 표정과는 겉돌아서 극 몰입에 약간의(?) 방해를 주기는 했지만, 소헌왕후의 극중비중이 크지는 않을 듯해서 패스~

초반 비밀스러운 행동으로 스토리에 박진감과 긴장감을 주었던 장혁의 무술연기와 마초적인 매력은, 추노에서 이미 입증되고도 남았기에 더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의 정체가 누구이며, 무엇때문에 세종 이도를 암살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드라마는 과거 한지점으로 옮겨갑니다.
드라마는 이도의 장인이자 영의정인 심온을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무술옥사(강상인의 옥사라고도 불리죠)를 재현하며, 세종과 태종을 대조적인 모습으로 비춰갑니다. 아시다시피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정립한 왕이죠. 형제들과 처가까지 피로 물들이면서 강력한 왕실을 구축했던 인물이고, 평가야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태종의 강한 철의 통치가 있었기에 세종대왕이 문화정치를 펼칠 수 있었고, 왕실의 흥망성쇠는 있었지만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세웠다는 일반적인 평을 합니다. 신권정치를 꿈꿨던 정도전과 강한 왕권통치를 꿈꿨던 태종이었기에 서로의 이상향이 달랐지요. 때문에 정도전은 개국공신이었음에도 잔인하게 제거되고 말았고 말이지요. 무술옥사도 태종의 강력한 왕권정치 구축이라는 연장선에서 조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병조참판 강상인이 군사문제를 세종에게만 보고한 것에 진노한 태종이 강상인과 박습을 귀양보내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종의 장인 심온은 사신으로 명나라를 가게 되었는데, 당시 영의정이라는 최고권력에 임금의 장인이었으니, 한마디로 줄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환송했던 것이 태종의 귀에 들어가죠. 강한 왕실을 위해 외척경계는 필수였던 태종에게 심온을 제거할 필요가 커졌고, 군문제 보고로 문제를 일으켰던 강상인을 추국, 배후가 심온이라는 거짓자백을 하게 만듭니다. 심온의 집안은 대역죄인으로 몰려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심온은 스스로 자결을 하는 것으로 무술옥사는 종결지어졌습니다.
드라마는 이 무술옥사의 한 복판에 똘복이(채상우)와 반푼이라고 놀림을 받는 그의 아버지 석삼이(정석용), 어린 담이(김현수, 훗날 신세경역의 소이)를 등장시킵니다. 몸을 피하라는 세종 이도의 밀지를 심온에게 전달하다 붙들려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목도하지요. "아버지가 아들을 지킨다"며 똘복이를 만류하고, 명에서 돌아오는 심온을 만나러 의주로 달려간 석삼이, 그러나 생각시를 통해 전달한 세종의 밀지는 조말생(이재용)에 의해 조작되었고, 똘복이는 아버지의 죽음이 이도(세종)의 거짓편지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도 역시 태종이 심온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상왕이 마음 먹은 일은 그 누구도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힘없이 돌아서고 말지요. 두 주먹만을 쥔채 힘없이 돌아서야 했던 세종,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름뿐인 허울뿐인 왕이었던 것입니다. 장인의 죽음조차 막지못했던 무력한 임금, 아버지 태종은 그에게 베어낼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간청 하나도 들어주지 못한 힘없는 지아비 세종은, 그렇게 눈물만 삼킬 뿐입니다.
아마 이런 일들로 인해 세종 이도가 주변인물들, 혹은 백성들에게 힘이 돼주는 강한 군왕이 되리라 다짐했을 것입니다. 태종은 스스로에게 권력을 집중함으로써 강한 군왕, 강한 왕실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종은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을 많이 만들어 베푸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을 듯도 싶습니다. 실제 세종이 한글을 비롯해 농사, 천문, 과학 등의 실용학문을 적극 지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고 말이지요.
그러나 드라마는 단지 태종에게 반항하지 못했던 나약한 세종 이도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대목은 바뀐 밀지를 백성이 어리석어(글을 몰라) 읽지 못했다는 것에 촛점을 맞춥니다. 여기에 똘복이가 이도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를 부여하지요. 아버지를 죽인 원수 이도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똘복이는 훗날 겸사복 강채윤(장혁)이라는 이름으로 궁궐에 들어가 세종을 암살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첫장면 장혁의 화려한 액션이 빛났던 장면이 그 상상신의 일부였던 것이죠.
그리고 드라마는 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려고 했을까에 그 동기를 부여합니다. 글을 몰라 백성을 억울한 죽음에 빠뜨렸다는 트라우마는 강한 왕권을 지향하는 태종의 피의 정치에 대한 두려움과 맞물려 태종과는 다른 정치적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아버지 태종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권력은 오로지 왕 단 한사람만이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이 이방원 자신이라고 하지만, 세종은 아버지 태종과는 정치관을 달리하죠. 강한 왕권을 위해 태종의 정치는 피를 요구했지만, 세종은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이 힘이자 군왕의 권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백성)이 없게 하겠다는 세종의 애민정치, 위민정치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요.

나아가 진정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고 그 교훈을 들려줄 것입니다. 위정자의 정치적 근간, 즉 그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 것이며, 뿌리깊은 나무가 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혜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군 세종이 사대부라는 거대한 힘과 싸워 만백성이 하나의 문자로 통용하는 마방진을 어떻게 완성하는 지를 담아갈 것입니다. 세종에게 한글은 온백성 모두가 읽고 써도 그 말과 뜻이 같았던 거대한 마방진이었던 것입니다. 또다른 석삼이, 똘복이, 담이같은 백성들을 만들지 않을....이들이 조선을 받치는 가장 밑바닥 뿌리들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안정된 연기력으로 무장한 성인연기자들, 그리고 아역배우들의 열연까지 첫회부터 대박의 조짐이 보이는 뿌리깊은 나무, 특히 장혁의 아역으로 나온 채상우의 연기가 아주 좋더군요. 아역들이 물러가고 성인연기자들로 본격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첫회부터 장혁에서 한석규까지 잠깐씩 등장시켜 연결고리들을 만든 것도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관록파배우 백윤식의 무심한 듯 냉소적인 카리스마, 송중기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서글프면서도 아버지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한 반항적 눈매가 대조적으로 매력적이었던 1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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